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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75) 88년 관선 서울시장

1989년 3월 9일 노태우 대통령(맨 오른쪽)이 고건 서울시장(오른쪽에서 둘째)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큰 의미에서 행정(行政)도 정치(政治)다. 의회에서 하면 정치, 정부에서 하면 행정이다. 다만 정치와 행정의 가장 큰 차이는 목적에 있다. 정치는 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한다. 행정은 권력이 목적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목적으로 한다. 오로지 국민에게만 봉사하면 된다. 정치인이라면 정권에 충성해야 하지만 행정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일에 정성을 쏟다 보면 자연스레 정권에 좋은 영향을 끼칠 따름이다. 내가 몸으로 느낀 차이다.

 정치인 생활을 마무리한 나는 1988년 12월 5일 행정인으로 돌아갔다. 노태우 대통령은 나를 제22대 서울시장으로 임명했다. 지금과 달리 선거 없이 대통령이 시장을 임명하던 시절이다.

 서울시청으로 처음 출근한 12월 6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명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시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행동으로 옮기는 참된 공복(公僕)이 되겠습니다. 서울시가 복마전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끗한 시정을 펴나갈 방침입니다. 시장 독단으로 결정하는 밀실행정은 없을 것입니다. 시장이 솔선수범해 공개행정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기자가 질문을 쏟아냈다. 한 여기자가 물었다.

 “인구 20만~30만 명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이 인구 1000만 명의 도시 행정을 잘 이끌 수 있을까요?”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질문이다. 웃으며 답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계속 당선된 사람보다는 한 번 당선되고 한 번 떨어져본 사람이 민심을 더 잘 헤아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의 물음처럼 서울은 큰 도시였다. 내무부 행정과 기획계장으로 일하며 도시계획을 연구하던 1960년대 후반, 이호철 작가의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그때 서울 인구가 300만 명이었다. 서울시장으로 임명된 88년 말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을 돌파해 1100만 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서울은 만원을 넘어 초만원이었다. 교통·주택·환경·상하수도에 쓰레기 문제까지. 도시화가 불러온 부작용으로 서울시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87년 6·29 선언을 계기로 시민의 집단 민원도 분출하기 시작했다. 행정의 민주화가 필요했다. 공개행정에 그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고 취임할 때부터 강조했다. 권위주의 시대의 일방통행식 행정 관행을 버려야 했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무작정 따라오라고 홍보만 한다면 시민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 특히 현장에서 시민을 만나면 자기와 관련 있는 특정 시책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요 정책을 비밀로 하고 밀실에서 결정하면 부패의 온상이 된다. 불필요한 오해도 부를 수 있다. 국가안보나 부동산 투기 관련 대책 등 보안이 필요한 극히 일부 대책만 제외하고는 공개행정을 펼치기로 방침을 세웠다.

 20년 가까이 행정을 하면서 나름 전문가라고 생각해 왔는데 역시 서울시정은 만만치 않았다. 시정을 파악하는 데 6개월이 걸렸고 시정을 장악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서울시 직원이 보기에 시장은 객(客)이다. 평생직장으로 서울시에서 일한 직원들은 스스로를 주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장이 시정을 샅샅이 파악하지 않는다면 몇 년 머물다 떠날 과객이 돼버린다. 노력이 필요했다.

 서울시정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계획이다. 시장관저에 작은 서재가 있었다. 관저에 머물 때 대부분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서재 한쪽 벽에 서울 도시계획 전도를 붙여놓고 매일 들여다봤다. 역시 교통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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