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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아무리 비참해도, 살아있는 것이 좋아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 중 ‘술이 깨면 집에 가자’라는 작품이 있다.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는 한 남자와 가족의 이야기다. 비참하고 슬픈 내용인데, 묘사는 담담하고 산뜻하다. 전쟁 사진작가 가모시다 유타카와 그의 아내 만화가 사이바라 리에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이바라 리에코라는 이 만화가, 일본에서는 ‘불우한 유년기’의 상징과도 같은 작가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3편의 작품이 『우리집』 『여자이야기』 『만화가 상경기』다. ‘성장기 불행 3부작’이라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이 작품들에서 가출·폭력·매춘·약물 등은 일상이다. 『우리집』이 가난한 어촌마을 부모에게 버림받은 세 남매의 성장기라면, 『여자 이야기』는 불우한 환경에서 특별한 재능도 없이 태어나 끝까지 행복해지지 못한 동급생 세 소녀의 이야기다. 작가가 이 마을에서 탈출해 도쿄로 올라와 만화가가 되기까지의 사연은 『만화가 상경기』에 담겼다. 돈이 없어 술집에서 일하며, 백수 남자친구에게 돈을 뜯기는 20대. 이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알코올 중독인 남편을 만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그를 떠나보낸다. 읽다 보면 ‘뭐 이런 인생이 다 있나’ 싶다.

만화 『여자 이야기』. [AK 커뮤니케이션즈]
 그러나 의외로 그는 ‘개그 만화가’로 불린다.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슬프지만, 읽다 보면 종종 미소가 번진다. 남들의 눈에는 엄청나 보이는 불행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능청스레 툭 던지는 작가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여자 이야기』의 세 소녀는 탈선의 길로 들어서지만 외모마저 예쁘지 않아 “날라리가 되어서도 여전히 변변치 않은” 신세다. 열아홉에 결혼한 친구는 남편한테 두들겨 맞고 입원해 “글쎄 축구공처럼 뻐엉~ 차더라니까”라며 ‘아하하’ 웃는다. 이 아픈 이야기들을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에 담아내면서 작가는 ‘술이 깨면 집에 가자’의 대사처럼 말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이 좋아. 아무리 비참한 인생이라도.”

 이제 그녀는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고, 방송 게스트로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 작가가 됐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받은 팬레터 중 제일 기뻤던 건 “정말 회사에 가기 싫을 때 당신의 만화를 봅니다. 울고 웃다 보면 이상하게 ‘자, 내일도 회사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라는 내용이었다고. 지난 며칠, 초여름 비가 주룩주룩 내려 기분마저 어둑하기에 사이바라의 신간 『이케짱과 나』를 집어 들었다. 외로운 소년과 그를 지켜주는 작고 신비로운 친구 이케짱의 우정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역시 눈물 나는 이야기지만, 읽고 나니 묘하게 힘이 난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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