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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공포의 작명

이규연
논설위원
9년 전 여름이었다. ‘쓰레기 만두’ 사건이 터졌다. 폐기처리해야 할 중국산 단무지로 만두소를 만든 악덕업자들을 입건했다고 경찰이 발표한다. 식중독까지 일으키는 만두소를 대부분의 만두업체가 썼다고 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식탁은 뒤집어진다. 식품업체와 동네 만두가게가 줄줄이 넘어진다. 그때 파산한 만두회사 대표가 나중에 목숨을 던지는 비극도 벌어진다.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꽤 유명한 만두가게를 운영하던 K씨(59)를 취재한 적이 있다. 매상이 10분의 1로 줄자 일반 분식집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K씨 가게는 지금도 만두를 취급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사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많은 업체가 그런 단무지를 쓰지 않았다. 단무지의 유해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식품당국이 해명에 나서지만 버스는 떠난 뒤였다. 수사 내용도 그렇지만 그 작명(作名)이 더 문제였다. 경찰이 ‘쓰레기로 버려질 수 있는 무의 자투리를 속에 이용한 만두’라고 표현하자 언론은 ‘쓰레기 만두’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다섯 음절은 예상하지 못한 집단공포를 일으킨다.

 ‘피하주사 이론’이라는 게 있다. 의학용어를 써서 그렇지 복잡한 가설은 아니다. 병원에서 알약 복용보다 즉각적인 약효가 필요할 때 피부 밑에 직접 주사를 놓는다. 피하주사처럼 매스컴의 효과가 시청자·독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다. 이 이론은 개인의 판단력·주체성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집단공포를 설명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뻥튀기 메시지가 즉각적인 공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같이 정보 유통속도가 빠른 초연결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사회의 십 년을 돌아보자.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거나 유행할 때 어김없이 공포의 작명이 등장했다. 근육 주변 조직을 썩게 하는 박테리아가 발견됐을 때 언론은 이를 ‘살을 파먹는 세균’이라고 표현했다. 병원은 선정적 작명의 덕을 누렸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돈·시간을 써야 했다. 이명박정부를 위기로 몰았던 ‘인간광우병’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의학명칭인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vCJD)이라고 불렀다면 사회혼란은 덜 했을 것이다. 이같이 공포의 수위는 작명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요즘 ‘살인진드기’ 공포가 퍼지고 있다. 산행과 골프를 취소하고 야외활동을 꺼린다. 그 의학명칭은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이다. 변형 바이러스에 감염된 작은소참진드기에게 물렸을 때 발병할 수 있다. 하지만 ‘살인’에 맞지 않게 치사율은 일본뇌염의 4분의 1 수준이다. 변형 바이러스를 지닌 놈도 1000 마리 중 5마리에 불과하다. 공포 확산의 요인 중 하나는 잘못된 작명이다. 사실 살인진드기라는 표현은 정확하지도, 적합하지도 않다. 매년 복어를 먹고 죽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살인복어’라고 하지 않는다. 조개를 먹고 치명적인 패혈증을 보이는 사람도 나오지만 ‘살인조개’라고 부르지 않는다. 만약 언론이 일제히 그렇게 칭한다면 전국의 복집·횟집은 줄초상이 날 것이다.

 공포는 위험의 방패이기도 하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면 위험을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과잉공포는 공동체의 제오열(第五列)이다. 집단 현기증을 일으키고 대오를 흔든다.

 우리는 과격한 표현이 일으키는 대혼란을 자주 겪으면서도 뇌 속 해마에 그 기억을 새겨두지 못한다. ‘공포 작명 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물론 표현의 자유를 침범할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은 작다. 다만 공포 수위를 줄여줄 사회적 장치나 신사 규칙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령 신종질환이 출현했을 때 질병관리본부와 출입기자단이 머리를 맞대고 덜 격하고 더 걸맞은 표현을 재빨리 찾아내는 식이다. 괴기스러운 표현이 이미 등장했다 해도 기민하게 조기퇴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과학보도에서만이라도 공포의 작명은 사라져야 한다. 살인진드기와 SFTS, 둘은 같으면서도 엄연히 다르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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