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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로 짝 조각해 보렴" … 존중 배우는 미술수업

지난 28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고 1학년 미술시간. 30명의 학생이 2명씩 짝을 지어 지우개를 깎아 상대방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다. [양평=오종택 기자]

지난 28일 양서고 체육관에서 임춘섭 교사가 1학년생들에게 유도의 낙법 동작을 가르치고 있다.
“판화는 한쪽 면만 볼 수 있지만 조각은 여러 면을 함께 볼 수 있어.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 판화와 조각 중 어떤 방식으로 보는 게 좋겠니?”

 지난 2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양서고 1학년 미술 시간. 30명의 학생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정옥훈(53·여) 교사가 지우개를 깎아 만든 학생들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내보이며 설명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사물이 달리 보이듯 사람도 마찬가지야. 한쪽 면만 보지 말고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많은 장점이 보인단다.”

 유소정(16)양이 자신이 만든 엄지손가락만 한 신발 작품을 들고 나왔다. “처음엔 디자인이 촌스러워 맘에 들지 않아도 신을수록 편해요. 장원이(16)도 알면 알수록 상대방을 잘 배려하는 속 깊은 친구입니다.” 이번엔 장군이 유양을 생각하며 만든 원숭이를 내보였다. “원숭이는 낯선 무리에게 경계심이 많지만 같은 무리가 되면 결속력이 강해져요. 소정이도 겉으론 차갑지만 속마음은 정말 따뜻해요.” 두 학생 모두 “평소 지나쳤던 친구의 장점을 깊이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같은 시간 2학년 한 교실에선 조동민(32) 교사가 물리 수업 중이었다. 딱딱한 공식이 칠판 가득 쓰여 있는 여느 과학 수업과 달리 영국 물리학자인 패러데이(1791~1867)의 사진과 일대기가 교실 앞에 걸려 있었다. “패러데이는 가난 탓에 정규교육을 못 받았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했어. 밝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보다 나은 내일이 열리는 거야.” 10여 분간 패러데이의 생애를 들려준 조 교사는 차근차근 전자기 유도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른바 ‘패러데이의 법칙’이다. 손지훈(17)군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과학자의 삶을 이해하며 수업을 들으니 어려운 물리 법칙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고 말했다.

 양서고의 교육 철학은 ‘전 과목의 인성교육화’다. 평소 수업에서 교과목 내용과 연계해 존중과 배려, 협동 등 인성의 다양한 덕목을 배운다. 이 같은 인성 중심 교육은 2011년 3월 권진수(61) 교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반계와 실업계(상업) 학생이 함께 다니는 기숙학교인 양서고는 2000년대 초반까지 만년 미달의 종합고였다. 2003년 자율학교로 지정돼 전국 단위 선발권을 갖게 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2010년 경기도교육청의 정책 변화로 자율학교 지정이 취소됐다. 다시 평범한 ‘시골’ 종합고로 돌아온 양서고는 위기를 맞았다.

 “학교가 패닉에 빠져 있었죠. 전국 단위 선발권도 없어지고 입시 순서도 후기로 밀렸습니다.” 권 교장은 취임 당시를 회상하며 “온 교사가 머리를 맞댄 끝에 내놓은 해법은 바로 ‘인성이 바탕이 된 전인교육’이라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인성교육을 전담하는 창의지성부를 만들어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짰다. 교과목별로 정규수업과 연계할 수 있는 인성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교사들의 스터디모임도 생겨났고 매학기 한 번 이상 공개수업과 모니터링을 통해 더 나은 인성교육법을 연구했다.

 하루 40분씩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줄여 교사와 학생 간 대화 시간으로 활용했다. 지난해부턴 1·2학년생 전원이 매주 한 시간씩 정규 수업 시간에 유도를 배운다. 1학년 신채원(16)군은 “절제된 운동을 통해 규칙과 예절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도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토티스쿨’은 양서고 1·2학년생 40명이 인근 양수중 학생들의 1대 1 멘토가 돼 토요일마다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 지도교사인 정현희(42·여) 수학교사는 “직접 교재를 만들고 교수법을 연구할 만큼 아이들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2학년 이종석(17)군은 “멘토가 되면서 스스로도 성장하는 것 같다”며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돼 성적도 올랐다”고 말했다.

 현재 양서고는 학생들이 몰리는 명문고다. 지난해 입시설명회 참석자는 3083명으로 전년(1128명)의 3배에 달했다. 성적도 자율학교 시절보다 높아졌다. 졸업생 대비 ‘SKY(서울·고려·연세대)’ 합격률이 2009·2010년엔 15%였지만 자율학교 지정 취소 이후인 2012·2013년엔 각각 24%와 20%였다.

양평=윤석만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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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