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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서울서 두 시간 달려 철원에서 땅굴을 보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 주말, 철원에 있었다. 나선 길은 산책처럼 가벼웠는데 오는 길은 가볍지 않았다. 올 들어 가장 더웠다는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눈으로 확인한 분단의 현장이 주는 무게라는 게 있었다. 웬 신파냐고 하실 분, 있을 거다. 정치지향적 사람이나 실향민이 아닌 대다수 시민에게 분단이란 주제가 그리 무겁지 않게 된 게 꽤 되므로. 북의 김정은이 핵을 들고 흔들 때도 “쟤는 또 뭐니?” 하고, 북한 아나운서가 힘주어 협박하는 ‘복수의 불바다’니 뭐니 하는 말을 ‘개그’처럼 들어 넘기는 것도 다반사니 말이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 수준이었다.



 철원엔 제2땅굴이 있었다. 전쟁을 『삼국지』를 통해 이해하는 버릇이 있는지라 땅굴을 돌아보며 후한(後漢) 말의 전투를 생각했다. 요동의 실력자 공손찬(公孫瓚)의 멸망은 원소(袁紹)가 성 밑으로 파고 들어온 땅굴을 막지 못해서였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두더지부대를 만들어 조조(曹操) 진영으로 땅굴을 팠고, 기주성 전투에선 조조가 땅굴을 팠다. 땅굴은 이렇게 고대 전쟁부터 활용된 적대적이고 치열한 전술이었다. 철원 땅굴은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던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된 1972년 파기 시작했단다. 땅굴은 그렇게 말과 실제가 다른 북한과 경계를 맞대고 사는 우리의 험한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수사불패(雖死不敗·비록 죽을지언정 패배는 없다). 철원지역을 지키는 6사단 정문에 걸려 있는 글귀다. 스포츠맨들이 쓸 땐 그저 그랬던 이 말이 앳된 얼굴의 아들 같은 병사들 머리 위로 펼쳐져 있으니 비장하고 짠했다. 병사들은 입을 열면 “6사단은 6·25전쟁 당시 최초의 승리를 거두고 압록강에서 물을 떠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수했으며, 적군을 가장 많이 사살한 구국사단”이라고 자랑했다. 우리 아들들에게 북은 사살하고, 죽음으로 맞서야 하는 현실의 적(敵)이었다.



 며칠 전, 중국인 사업가 친구와 북한 문제를 놓고 시시덕거렸다. 중국과 한국, 미국을 오가며 사업하는 이 친구는 최근 미국에 갔더니 그곳 친구들이 한국 사업의 위험성을 걱정하더란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온통 윤창중 얘기만 해서 그도 금세 북한을 잊어버렸단다. “북한에 대해 한국인들은 무시하고, 중국인민들은 무관심한데 미국시민들만 불안해하더라”는 둥 이날 밥상에 오른 남북 문제는 긴장감이라곤 없었다.



 철원에서 이 장면이 떠오르며, 문득 블랙코미디처럼 어긋나는 우리의 현실에 쓴웃음이 나왔다. 늘 뒤통수치는 북한, 표정만 비장하고 해결책은 없는 우리 정치권과 정부, 북한을 코미디나 조크 소재로 삼는 보통 사람들, 그럼에도 긴장 어린 눈빛으로 휴전선을 지키는 앳된 병사들…. 이 블랙코미디는 언제·어디까지 계속될까.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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