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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아베 망언보다 아베노믹스가 무섭다

이철호
논설위원
지난주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23일 닛케이 평균주가가 7.3%나 떨어지자 일본 열도가 술렁였다.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다한 게 아니냐”는 초조감이 묻어났다. 양적완화→엔화 약세→주가 상승의 선순환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느낌이다. 일본경제신문은 헤지펀드의 프로그램 매매를 원흉으로 지목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노믹스의 본질은 심리학”이라며 “오를 때는 좋지만 무너질 때는 더없이 취약하다”는 비관론으로 접근했다. 주요 외신들은 “아베노믹스의 역습” “아베노믹스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는 그리 간단히 끝날 정책이 아니다.



 아베노믹스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지난해 일본이 겪은 3개의 쇼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뒤에서부터 나열하면 맨 마지막이 중국과의 경제 역전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돼 온 터였다. 좀 더 큰 쇼크는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다. 평화에 젖어 살던 일본인들이 전쟁 가능성을 묻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무역수지 적자다. 일본은 오일쇼크 때를 제외하곤 1960년대부터 줄곧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 왔다. 50년 넘게 당연시해 온 ‘경제=일본’ 신화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엄청났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만성질환으로 골병이 들었다. 끈질긴 디플레에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기 꺼렸다. 노후 불안으로 노인들은 지갑을 닫았다. 앞이 안 보이는 사회, 숨 막히는 나라, 꿈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깊은 좌절감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선거 때 다짐한 대로 화끈하게 윤전기를 돌려 엔화를 뿌렸다. 군복을 입고 탱크에 올라 “패배주의를 벗고 강해지자”고 주문했다.



 아베 총리는 인플레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주변국들의 불편한 심리를 자극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생체실험 부대인 731 숫자가 선명한 자위대 훈련기를 타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변국들이 반발하자 “7은 기종, 3은 제조순번, 1은 편대장기를 의미하는 숫자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프로야구 시구 때는 개헌을 의미하는 평화헌법 96조와 똑같은 등번호를 달고 나왔다. 총리 측근들은 “단지 96대 총리를 뜻할 뿐”이라고 해명했다. 아무리 우연이라 해도 자꾸 반복되니 아베 정권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사실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는 새로운 실험이 아니다. 일본은행이 2001년부터 5년간 단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청나게 적극적이고 매우 공격적이란 점이 다르다. 일본은 “디플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라며 미국·유럽의 간접적 지지를 확보했다. 따지고 보면 미국·유럽은 자신들도 줄기차게 양적완화를 하는 마당에 일본을 비난할 입장이 아니다. 그 결과 달러당 100엔을 웃도는 엔화 약세로 주변국들만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아베 정권이 “근린궁핍화”라는 비난에 주춤할 기미는 전혀 없다. 아베노믹스를 포기하는 순간 정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본질은 국가 주도로 인위적인 버블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인플레 기대로 금리가 급등하면 기업은 투자를 망설이고 경제 활성화는 물 건너간다. 정부 부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 재정만 망가질 뿐이다. 또 하나의 약점은 언제 민심 이반에 부딪힐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이 워낙 낮아 경기가 풀려도 설비 투자보다 수익성과 가동률 제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임금은 안 오르고, 엔화 약세로 수입물가만 치솟으면 “누구를 위한 아베노믹스냐?”는 정치적 반발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일본은행은 한층 필사적으로 국채 매입에 나설 게 분명하다.



 주가가 폭락한 23일 저녁, 일본경제신문이 주최하는 ‘아시아의 미래’ 만찬회가 열렸다. 아베 총리는 축사에서 “일본 경제를 확실하게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게이단렌 회장은 건배를 들며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의 정·관·재계가 손잡고 최후의 승부에 나서는 분위기다.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에겐 큰 부담이다. 성공할 경우에는 한국 수출기업들이 힘든 경쟁을 치러야 한다. 만약 실패하면 일본의 신용등급이 추락하고, 일본 금융기관들이 한꺼번에 해외자산을 환수할 수 있다. 우리 금융 부문에 타격이 예상된다. 지금은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아베 총리의 망언 시리즈에만 정신을 빼앗길 때가 아니다. 오히려 외통수로 치닫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더 겁난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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