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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도 아름답다 … 세월의 흔적은 훈장

21세기 아시아 시대를 열 상상력을 모색하는 ‘아시아 창의 리더십 포럼’ 6번째 시간이 24일 서울대미술관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새로운 시대 건축과 디자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고민했다.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60) 교수가 ‘건축의 지속적 가치와 지역성’을, 홍콩 폴리텍대 베니 렁(52) 교수가 ‘인간중심적 사고와 디자인: 지속가능한 중국과 아시아를 향한 길은?’을 주제로 강연했다. 서울대미술관(관장 권영걸)이 주최하고, 중앙일보·한샘이 후원했다.



5년 전, 숭례문이 불에 탔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했던 것일까. 김광현 교수는 숭례문을 예로 들며 “건축은 그 건축물을 짓고 이용해 온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이다. 건축의 지속적 가치란 이와 같은 공동체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창의 리더십 포럼 ⑥ 21세기형 도시



일방적 서구모델 벗어날 때



베니 렁 교수(左), 김광현 교수(右)
 건물은 한번 지어지면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 어떤 장소에 살며 어떤 건축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삶은 변할 수 있다. ‘습관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학교 건축을 바꾸면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 건축이기에, 우리가 사는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가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근대건축은 ‘공간’을 중요시했다. 하나의 부지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 얼마나 크고 높은가, 아름다운가가 건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근대건축의 폐해는 발원지 유럽보다 후발주자였던 아시아에서 더 극심하게 나타났다.



 서구화를 지상과제로 여긴 아시아의 도시들은 기존 공간을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균질화·규격화를 지표로 삼았다. 그 결과 인간은 사라지고 면적·높이 등 수치만으로 표현되는 획일화된 도시가 줄을 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운하 옆 자전거 보관소. 빨간 바닥이 주변 환경과 어울리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전거 보관소 하나라도 도시 전체의 흐름과 어우러지면 도시인의 생활을 담은 지역명소가 된다. [사진 김광현 서울대 교수]
 21세기 건축의 주제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도시에는 그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시간이 적층(積層)돼야 한다. 김 교수는 이를 “도시는 누더기일수록 좋다”라고 표현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아름다운 도시로 꼽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시대를 이어온 건축물이 만들어낸 지저분하고 꼬불꼬불한 골목마다 다양한 사건과 경험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시를 만들려면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더럽거나 낡은 것, 사람들의 자취가 만들어 낸 흔적을 받아들이고, 이를 개수(改修)해 나가며 새로운 삶의 형태를 입히는 것이 이른바 ‘지속가능한 건축’이다.



 이것은 ‘지역성’과도 통한다. 지역성은 궁궐·기와집 같은 전통의 문제가 아니다. 허름하고 별볼일 없는 건물이라도 그 곳에 사는 이들의 고유성이 드러난다면 그것이 바로 건축의 지역성이다.



김 교수는 “서울·부산·광주·대구 등 우리 도시를 바라볼 때 아름다운 건축물, 기념비적인 건축물에만 매료되지 말고 추하든 아름답든 우리의 삶의 조건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이 현재라는 시점에서 지역적 고유성을 얻으려면 기존 건축물과 도시공간 안에 변화한 도시생활과 산업을 내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국·홍콩·싱가포르 등의 산업화와 디자인을 연구해온 베니 렁 교수 역시 중국의 놀라운 성장세와 근대화의 그늘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중국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커다란 극장무대”라며 “중국엔 661개의 도시가 있고, 1억 5000만에서 2억 명 정도의 인구가 시골에서 도시로 유입됐다. 높은 빌딩이 쉴 새 없이 올라가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사고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예로 후난성(湖南省)에서는 15층 호텔이 단 6일 만에 지어졌고, 220층짜리 건물을 불과 90일만에 짓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급변 속에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한 채 개인화·파편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렁 교수는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중심적 디자인의 개념을 유교의 ‘어질 인(仁)’에 담긴 인간존중과 평등사상, 연대의식 등에서 찾았다.



고도성장 중국, 인간으로 돌아가야



 대표적인 사례로 직장인의 생활패턴을 면밀히 연구해 오래 앉아 있어도 피곤함을 덜 느끼도록 만든 ‘에어론(AERON) 의자’나 물이 부족한 중국 농촌을 배려한 ‘랜드워셔(Landwasher) 변기’(소변을 정화시켜 물 대신 사용) 등을 꼽았다.



 렁 교수는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시행착오는 고도성장을 경험한 한국·일본 등이 이미 거쳐온 길이다. 이들 국가가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중국에 제시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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