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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 책무 일깨운 중앙, 약자 못 지킨 정부 비판한 한겨레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논리 vs 논리] 계약에선 갑·을 지위 같아야 하지만…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갑을관계



‘갑을문화’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갑’과 ‘을’이란 원래 계약을 맺는 두 당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된 계약에서는 갑과 을의 지위가 같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결과를 좇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갑은 강자고 을은 약자다. 갑은 을을 부리는 ‘고객’이고, 을은 갑에 생계를 매달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갑들의 횡포가 숱하게 벌어지곤 한다. 라면상무 사건, 경주빵 회장 호텔 종업원 폭행,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최근 벌어졌던 ‘갑질’들만 꼽아보아도 두 손의 손가락을 모두 써야 할 정도다.



 자유와 평등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자유와 평등을 침해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로 다가오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약탈적 갑을문화’는 자유와 평등을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모두 갑을문화의 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둘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중앙은 갑들을 훈계하려 하고, 한겨레는 을들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다그치려 한다. 각각의 사설을 꼼꼼히 따져보자.



갑의 윤리와 을 위한 제도 함께 보완해야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보호자(conservator)’에서 온 말이다. 보수주의자의 원조 격인 에드먼드 버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했다. 지도층은 도덕적으로 흠결 없어야 하며,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앙의 논리는 보수주의의 논조에 충실하다. 남양유업을 향해 ‘사과의 진정성을 입증하라며’, 가진 자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우는 식이다. ‘굳이 갑을관계나 경제민주화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라는 표현에서는 덕과 성품부터 먼저 점검하는 보수주의의 전형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반면에 한겨레는 을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이를 제대로 보듬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는 데 힘을 모은다. 평등을 실현하는 법과 ‘강한 정부’로 약자를 보호하려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느껴진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이런 물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가진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덕과 의무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 역시 충분치 못하며, 정부의 역할 또한 굼뜨기만 하다. 두 문제 가운데 하나만 해결되어서는 대한민국이 올곧게 서지 못한다. 윤리와 제도는 함께 나아져야 한다. 이 점에서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은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다.



‘좋은 갑의 모습’ ‘을 사이 횡포’ 언급 없어



그러나 두 사설이 각각 놓치고 있는 사각(死角)지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 사설은 ‘나쁜 갑’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훌륭한 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좋은 교사는 학생을 무작정 야단치지 않는다. 닮아야 할 모델,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잘못을 지적한다. 언론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좋은 갑’의 사례를 통해 ‘나쁜 갑’의 문제를 지적해야 갑을문제에 대한 해법이 보다 분명하게 다가올 듯싶다.



 한겨레에도 묻고 싶은 점이 있다. 갑의 횡포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을들 사이의 횡포’는 어쩔 것인가? 갑에 시달리는 을은 또 다른 을에게 더 악랄한 갑이 되기도 한다. 사회 곳곳에 널리 퍼진 하청 구조를 떠올려 보라. 을을 보호하려면 제대로 된 ‘갑의 문화’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갑을 관계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갑이 을을 누르는 것도, 을이 갑을 윽박지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흥분한 여론은 대안보다 보복으로 흐르기 쉽다. ‘나쁜 갑’들은 당연히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있을 리 없다. 중요한 것은 ‘나쁜 갑’들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갑은 상황에 따라서는 을이, 을도 때로는 갑이 될 수 있어야 자연스럽다. 누구는 영원히 갑의 위치에 있고, 누군가는 계속 을의 처지에 있는 사회는 위험하다. ‘갑질’들에 대한 공분(公憤)의 밑에는, 우리 사회의 자유와 평등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지 않을까?



 건강한 언론은 냉철한 분석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북받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代辯)하는 것과 이에 휘둘리는 것은 다르다.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은 이 가운데 어느 쪽일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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