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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다니 큰일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직장 동료의 초등학생 딸이 며칠 전 엄마에게 살짝 고백하더란다. “엄마. 사실 나 지금 심심한데 엄마한테 심심하다고 말하기 싫었어.” 딸에게 시간 여유가 있어 보일 때마다 공부해라 책 읽어라 재촉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순간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얘기 잘 해줬다. 심심하면 방에 가만히 누워 천장 무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그냥 아무 생각이나 해도 돼. 물론 생각 안 해도 되고.” 딸의 표정이 환해지더란다. 현명한 어머니다.



 직업 때문인지 나도 심심한 것을 잘 못 견디는 편이다. 사회 한편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을 테니 그걸 빨리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뉴스가 아니더라도 이 기회에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쫓는 게 아니라 쫓기는 일상이다. 하긴, 쫓는다 해서 달라질 게 없다. 심심함을 즐기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끔은 작심하고 정신의 두꺼비집을 확 내려버린 뒤 정전(停電) 상태를 만끽하곤 한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 한 시간가량 정처 없이 쏘다니다 들어오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왠지 충만한 기분이다. 배터리 충전과 비슷하지만 휴대전화와 달라서 사람은 연결 코드를 빼버려야 거꾸로 충전이 된다. 생각해보면 심심함에도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충분히 심심해 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30분 정도 걸어 등교했다. 집 앞에서 돌멩이 하나를 골라 학교까지 발로 차면서 갔다. 야산을 돌고 실개천도 건넜으니 쉽지만은 않았지만 재미가 있었다. 심심했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지금 아이들은 심심할 시간이 없다.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니 그렇고, 어쩌다 시간이 남아도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이 심심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심심함의 위기다. 디지털 기기로 인해 짧고 단속적인 외부 자극에 길들여지면 뇌가 골고루 발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넘치는 자극에 뇌가 지친 탓에 감수성·집중력 약화, 기억력 장애, 유사자폐가 초래된다. 교육 목적으로 개발된 유아용 TV 프로그램과 유아용 DVD마저 오히려 아이의 언어발달을 저해한다



 창의력도 심심할 때 생기는 건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쉴 새 없이 떠먹이고 입력시키며 닦달만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알아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심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요즘 아이들도 고(故) 강소천(1915~1963) 선생의 동시 ‘눈 내리는 밤’에 나오는 아이와 같은 경험을 할 권리가 있다. ‘말없이 / 소리 없이 / 눈 내리는 밤 / 누나도 잠이 들고 / 엄마도 잠이 들고 / 말없이 / 소리 없이 / 눈 내리는 밤 / 나는 나하고 / 이야기하고 싶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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