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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배짱과 자신감, 집중력이 성공 일궜다

“경기 내용은 좋은데 스코어가 나질 않아 힘들다. 내년 투어카드는 잃지 말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배상문(27·캘러웨이)이 지난 4월 말 국내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에 초청선수로 출전했다가 컷 탈락하고 가면서 한 얘기다. 당시 왼쪽 어깨에 담이 걸려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국 팬들 앞에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정식 멤버로서 자존심을 지키려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솔직히 배상문은 지난해 PGA 투어 데뷔 첫해인 3월 트렌지션스 챔피언십에서 연장전에 나갔다가 루크 도널드(36·영국)에게 져 공동 준우승을 한 뒤 급격하게 페이스를 잃었다. 여섯 차례나 컷 탈락했고 두 차례 기권했다. 그 사이 5월 중순 외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해 10여 일간 머물면서 어머니(시옥희·57)와 함께 할머니를 병간호했다. 이후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PGA 투어에서 외로운 투쟁을 했다.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하고 가는 배상문에게 물었다.
 “PGA 투어에서 우승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배상문(오른쪽)이 지난주 PGA 투어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축하 의미로 물을 뿌리는 한국인 동료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작은 사진은 배상문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모습. [AP]
 배상문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답을 내놓았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마인드와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배짱이 필요하다. 노력으로도 만들 수 있겠지만 타고나야 한다. 또 자신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다른 모든 부분도 잘할 수 있다.”

 “아니, 배상문 하면 대구사나이의 두둑한 ‘배짱’이 트레이드마크 아니었나?”
 “한국 무대의 배짱으로는 PGA 투어에서 잘 안 통한다. 이제 완성단계로 다가가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다.”

 그렇게 대회장을 떠났던 배상문의 넓은 등짝이 눈에 선하다. 그러고는 겨우 20여 일이 지났다. 약 3주 만인 지난 20일(한국시간) 배상문은 HP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역전승으로 생애 첫 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미국 무대 진출 17개월 만이었고 한국 국적 선수로는 최경주(43·SK텔레콤)와 양용은(41·KB금융그룹)에 이어 세 번째로 우승한 선수가 됐다. 또 한국 국적 첫 20대 우승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가 우승한 뒤 외신과 인터뷰한 내용은 아주 당찼고 패기가 넘쳤다.
 “드디어 PGA 투어에서 우승했다. 내가 항상 꿈꿔 오던 것이다. 이곳에 계신 페기 넬슨 부인(대회 주최자로 PGA 투어에서 통산 52승을 한 바이런 넬슨의 미망인)과 이 대회의 모든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모든 것이 존경스럽다.”

 배상문이 생각하는 우승의 조건은 무엇일까. 발렌타인 챔피언십 이후 3주 만에 ‘훌륭한 문의 등장(Good Moon Rising)’이라는 외신들의 찬사가 쏟아진 배상문에게 어떤 터닝포인트가 있었던 것일까.

 그는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만남’이다. 특히 스윙코치(릭 스미스)와 캐디(맷 미니스터)다. 배상문은 이 두 사람을 모두 올해 초에 만났다. 그는 이 두 사람에 대해 “시간이 흐르면서 톱니바퀴가 잘 맞아 굴러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여태껏 배상문은 스윙코치가 없었다. 스미스는 필 미켈슨(43·미국)을 오랜 시간 지도했던 세계적인 스윙코치다. 또 미니스터는 닉 프라이스(짐바브웨)의 캐디로 지난 7년 동안 호흡을 맞춘 베테랑이다. 이처럼 배상문에게 새로운 만남은 즐거움을 줬다. 이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준 것이다.

 무엇보다 스윙에 변화가 생겼다. 배상문은 피곤할수록 공이 오른쪽으로 밀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 페이드나 드로 샷을 구사할 수 있었지만 질적인 면에서 만족하지 못했다. “이제 전체적인 틀이 잡혀 가고 있는 것 같다. 스윙코치가 적절한 양념과 같은 레슨을 곁들여 줘 현재 한두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상문에 하루 앞서 지난 19일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메이저 골프대회인 일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형성(33·현대하이스코)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배)상문이 때문에 내 메이저 우승이 단 하루 만에 묻혀 버렸다(웃음)”면서도 “상문이에게는 다른 선수들과 좀 다른 특징이 있다”고 했다. 좋은 코치를 만나 스윙이 변화된 것도 있겠지만 배상문은 ‘위기 극복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는 게 김형성의 생각이다.

 “우리는 어떤 압박감이 생기면 그걸 이겨 내려고 고민하는데 (배)상문이는 정말 절묘하게 어떤 농담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 버린다. 그러면서도 배짱이 좋다. 내 경우의 우승 조건은 최고의 무기인 ‘파워 페이드 샷’인데 배상문의 최고 무기는 ‘배짱’이라고 생각한다.” 김형성은 우승하는 선수는 뭐가 됐든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한 가지씩은 있다고 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에서 20년 넘게 경기위원장을 하고 있는 곽창환(70) 프로는 “배상문은 자기 자신을 이겨 낼 줄 아는 선수다. 상대가 누구든 개의치 않고 샷을 날린다. 배상문처럼 어느 순간 샷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뛰어난 선수는 드물다”고 말했다.

 배상문은 우승한 뒤 마지막 날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9번 홀에서의 더블보기를 꼽았다. 그는 “동타가 돼 조금 흔들렸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멘털 트레이닝을 통해 이런 상황을 수백 번도 더 연습했다. 그 덕분에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또 클럽에 대한 믿음도 승부의 분수령이 됐다. 1타 앞서고 있던 17번 홀(파3·171야드)의 아이언 샷은 정말 짜릿했다. 맞바람인 데다 깃대는 그린 오른쪽 라인을 감싸고 있는 워터해저드에 가깝게 꽂혀 있었지만 핀을 향해 직접 쏘았다. 그 순간 공은 아슬아슬하게 해저드를 넘어갔다.

 배상문의 이 배짱 샷은 맞바람이었지만 10야드 더 늘어난 7번 아이언의 믿음에서 나왔다. 이를 지켜본 키건 브래들리(27·미국)는 클럽을 6번 아이언으로 바꾸면서 그린을 25야드나 오버하고 말았다. 배상문은 2006년 캘러웨이골프와 인연을 맺으면서 지금까지 8년째 단 한 차례도 다른 브랜드로 클럽을 바꾼 적이 없다. 이 대회 우승 때 사용한 퍼터(투어밀드1#)도 2009년 한국오픈 우승 때부터 사용하면서 PGA 투어 첫 승의 보물 퍼터가 됐다.

 배상문 우승 조건의 마지막은 ‘열망’이다. “어머니는 혼자서 나를 키웠다. 나는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양을 알고 있다. 그 어머니에게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항상 선물하고 싶었다.” 어머니에 대한 열망은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라는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보다 더 가슴 뜨겁고 애절했다. 그는 지난 어버이날 미국에서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내 꼭 성공해서 돌아가꼬마”라고 카네이션을 보냈다. 시옥희씨는 그런 아들에게 “퍼팅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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