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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당! 30분간 모두 생각에 잠기시라

daguerreotype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슈만(위 사진)의 음악적 본질은 피아노곡과 가곡에 담겨 있다고 본다. 특히 피아노곡에서 쇼팽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슈베르트의 정처 없음과도 다른 슈만 특유의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상념’이라는 정신영역의 구현이다. 상념이란 생각·관념·걱정·근심·시름 따위를 두루 담고 있지만 지성의 통제를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에 강조점이 있다. 음악사상 가장 지성적인 작곡가의 하나로 평가되는 슈만에게 통제를 벗어난 생각의 상태가 피아노 선율로는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바로 상념을 객관화해 하나의 형상물로 제시하는 것이다. 상념의 형상화라고나 할까. 그런데 다른 작곡가와 구별되는 점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흘러가는 생각의 상태가 꽤 의도적인 작업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정처 없는 흐름에 휩쓸려 가 버리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생각을 정돈하면 상념의 상태를 벗어나는 건데 슈만은 매우 적절하게 ‘이것이 저의 상념입니다’라는 듯이 머리 혹은 가슴속 생각의 모양새를 그려내 보여 준다. 로맨티시즘의 한 절정인 슈만의 피아노는 바로 그런 상태에 도달해 있다. 시나 에세이를 쓰는 일도 말하자면 상념의 형상화일 텐데, 당연한 것이지만 언어구조물과 선율은 역할이 매우 다르다. 어떠한 시 작품도 일정한 설명이나 진술을 벗어날 수 없건만 소리로 들려오는 상념은 마치 꽃 같은 자연물을 바라보듯이 다채롭고 자유로운 발상을 열어 준다.

[詩人의 음악 읽기] 슈만의 ‘사육제’

미켈란젤리 연주의 슈만 ‘사육제’.
각별히 좋아하는 슈만의 작품이 있다. 작품번호 9번 ‘사육제(CARNAVAL)’다. 비교적 활동 초기인 20대 초반의 나이로, 작곡가로서의 완성도가 본궤도에 오른 시절의 작품이다. 슈만의 천재성이 드러난 첫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사육제 전 21곡에는 음악 해설서마다 꽤 긴 분량을 차지하는 배경 이야기감이 있다. 곡마다 표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일종의 암호 해독 놀이와도 같다. 아내 클라라를 만나기 전, 10대 시절에 사랑하고 정혼까지 했었다는 세 살 연상의 여인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의 자취를 심어 놓은 것이다. 그녀 고향의 지명(ASCH)과 자기 이름자(SCHA)를 갖고 연상작업을 했다는 1834년 9월 13일자 슈만의 편지를 근거로 한 것이다. 환상풍의 제1곡 서언에 이어 제2곡 피에로, 제4곡 우아한 왈츠, 슈만이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다는 다비드 동맹의 지도자 플로레스탄을 표제로 한 제6곡으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코케트, 응답, 쇼팽, 문제의 그녀 프리켄을 의미하는 에스트렐라, 우연한 만남, 파가니니, 고백, 휴식 등등 생각의 단서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표제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일일이 표제를 따라가며 슈만의 상념에 매일 필요는 없다. 가사의 의미를 모르면서도 팝송을 즐기듯이 각자 자기 상념을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 사육제를 좋아하게 된 동기는 마치 사회자가 오프닝 멘트를 하듯이 ‘따당!’ 하면서 출발을 알리는 도입부 때문이었다. 이 ‘따당!’ 하는 시원한 유도음에 귀가 붙들리면 내리닫이로 30분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거다. ‘자, 이제 숨을 고르고 생각에 잠기겠습니다’라고 알려 주는 도입인 셈이다. 미켈란젤리의 연주가 아주 좋다.

연주사의 기괴한 캐릭터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 희한한 인물이 ‘광인’으로도 불리는 슈만과 궁합이 잘 맞는 듯하다. 기인이라 해서 연주까지 기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표준적인 연주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다만 슈만의 상념을 자기화해 버린 듯 빠르고 느림의 진폭이 큰 전개가 특징이다. 자기 조국 이탈리아에 대한 경멸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영원히 고향을 등졌던 미켈란젤리의 비사교적이고 비타협적인 성정을 느껴 보려고 귀를 집중하게 된다. 여러 지면에서 알프레드 코르토의 아주 오래된 연주(1928년)를 최상으로 평가하는 것을 봤는데(의외로 매우 강한 연주다), 내게는 미켈란젤리가 살갑다.

갈수록 상념의 소재가 고갈되고 제한되는 것을 느낀다. 과도하게 진지해지는 증세다. 별스럽고 낯 뜨거운 성적 판타지는 옛말이 되어 가고 풍요로웠던 언어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 나가던 말놀이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어떤 예능 토크 프로그램에서 ‘인류 공동체의 미래와 조국의 앞날’을 날마다 생각한다고 했더니 다들 농담하는 줄 알고 까르르 웃는다. 하긴 웃을 법한 얘기다. 그렇지만 자유로운 상념을 제시하는 슈만 피아노곡을 틀어놓고서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이 요즘 기승을 부리는 한국 네오나치들의 행각이며 무섭게 확산되는 우경화 조짐 같은 것들이다. 밥을 굶을지언정 ‘먹고사니즘’에 매이지는 않겠노라던 어릴 때 다짐을 실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골방 작업실 상념이 매양 이런 내용이라면 인생이 참 재미없고 주제넘은 거다. 차라리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포탄이 빗발치는 듯 격한 타건이 작열하는 사육제 중간 대목쯤에서 문득 든 상념이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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