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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이름이 같아 맞아 죽은 로마 시인처럼…

‘시저는 죽어야 한다’(2012)의 한 장면.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신상 털기

실제 교도소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 극을 연습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다룬 이탈리아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가 최근 개봉했다(사진). 그들이 공연하는 ‘줄리어스 시저’에 관심이 생겨 원작 희곡을 읽어 봤다. 정치인과 군중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브루투스는 시저(카이사르)를 살해한 뒤 황제가 되려 하는 독재자를 공화정 수호를 위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한다. 그의 논리정연한 연설에 로마시민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시저의 피 묻은 옷을 들고 등장해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을 하자 시민들의 태도는 손바닥 뒤집히듯 변한다. 그들은 흥분해 브루투스와 그의 일파를 죽이자고 외친다. 여기까지가 제3막 제2장이다. 곧이어 이 극에서 가장 짧고 가장 소름끼치는 제3막 제3장이 이어진다.



시저 살해에 가담했던 신나(Cinna)와 우연히 이름만 같은 한 시인(詩人)이 시저의 장례에 참석하러 온다. 흥분 상태인 시민들이 그를 가로막고 이름을 묻는다.



신나:내 이름은 신나요.

시민 1:이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자, 시저 살해 공모자 놈이다.

신나:나는 시인 신나요, 시인 신나라고.

시민 4:시도 거지 같으니 찢어 죽이자, 시도 거지 같으니 찢어 죽여.

신나:난 시저 살해 공모자 신나가 아니라니까.

시민 4:상관없어, 이름이 신나잖아!



결국 동명이인(同名異人) 신나는 무참히 폭행당해 죽는다. 이 끔찍하고도 어이없는 일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상상일까? 아니, 플루타르코스 및 다른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시저의 장례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게다가 이런 일은 시공간을 초월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네티즌이 학교폭력 가해자나 ‘지하철 xx남’ ‘식당 xx녀’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의 신상정보를 찾아내 퍼뜨리는 이른바 ‘신상 털기’ 과정에서 동명이인 등 애먼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난데없이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나 SNS 계정에서 욕설 폭탄을 맞고 번호가 노출된 전화로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보호받아야 마땅한 성폭력 피해자 등의 신상정보까지 털면서 거기에 한술 더 떠,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당사자라며 퍼뜨리는 경우도 많다. 최근 ‘윤창중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인턴이라면서 다른 사람의 사진과 프로필이 넷상에 퍼진 것이 그 예다.



폐해가 지적되는 데도 신상 털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인간의 마음에서 최우선이자 가장 단순한 감정”이라고 말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사건 피해자 신상 털기는 호기심에 치우쳐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망각한 케이스다.



사건 가해자나 물의를 일으킨 주체에 대한 신상 털기는 호기심에 응징심리가 추가된다. 사실 사건 관련자나 사법 당국이 아닌 상태에서, 즉 사건의 세세한 정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 연루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일종의 린치(lynch), 사적 형벌로서 인터넷과 SNS 공격을 하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공격 대상이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경우나 동명이인 등 애먼 사람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공격 대상이 된 애먼 사람들이 “나는 당사자가 아니다” “동명이인일 뿐이다”고 아무리 증거를 들어 조리 있게 해명해도 “잡아떼지 말라”며 욕을 계속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과연 정의감에서 신상 털기와 공격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평소에 쌓인 화풀이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로마시민들은 시저 살해자와 동명이인일 뿐이라는 해명에도 시인 신나를 때려 죽였다.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게 진실이었고, 그들이 믿고 싶은 것은 “이 신나가 때려 죽여도 좋은 그 신나”라는 것이었다. 동서고금 인류에게는 이런 비틀리고 광적인 군중 심리가 있다. 기억할 것은 현대의 인터넷과 SNS 세상에서 우리 모두 시인을 때려 죽인 로마시민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맞아 죽는 시인도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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