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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한 초석잠, 쌉싸래한 여주…그리고 삼숙이!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틀에 박힌 식재료는 그만”… 토종 찾아나선 셰프들

노릇노릇 지져낸 계란 옷 안에 보드라운 생선살. 여느 생선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양인데 이태우 셰프는 자꾸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22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이 한식세계화를 위해 연 ‘찾아라, 맛있는 식재료’ 행사에서다.



비밀은 주재료인 생선이었다. 흔히 사용하는 동태나 대구가 아닌 생물 철갑상어를 썼다. 포를 뜬 철갑상어에 달래를 다져 넣은 계란 옷을 입혀 색감과 향을 더했다. 이 호텔 연회팀 소속 셰프인 그가 동료 4명과 함께 내놓은 특별한 한식 요리다. 먹어 보니 명태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담백했다.



민물고기인 철갑상어는 충북 충주 철갑상어 양식장에서 싱싱한 놈으로 직접 골라왔다. 수프와 스테이크 등으로도 선보였지만 주인공은 단연 철갑상어 달래전이었다.



단순히 호기심을 끌기 위해 철갑상어를 쓴 건 아니다. 한국 토종 식재료를 찾기 위해 책을 뒤지고 연구소를 들락거리다 단초를 잡았다. 철갑상어가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서식했다가 멸종했다는 얘길 듣고 언젠가 가족과 놀러 갔던 철갑상어 양식장을 떠올렸다. 정형화된 한식 식재료에 변화를 주면서도 전통 기반 한식을 만들어 보자는 행사 취지에도 딱 들어맞는 선택이었다.



식부자재, 중국은 600개 한국은 200개

다양한 식재료를 개발하고 유통하는 것은 모든 요리사의 숙명이다. 특히 한식세계화 최전선에 있는 이들에겐 절체절명의 과제다. 93년부터 홍콩ㆍ베이징 등지에서 한식당 ‘서라벌’을 운영해 온 신홍우 사장은 “중식은 주요 식부자재가 600가지가 넘는데 한식은 200여 개밖에 안 된다. 일식도 튀김가루만 수십 가지가 넘으니 비교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식자재 숫자가 적으니 자연스레 음식 종류가 적어진다. 어딜 가도 똑같은 된장찌개에 불고기를 내놓다 보니 소비자들이 쉽게 질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식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준비되지 않은 한식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이런 악순환이 더 심각해진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한식세계화 사업은 새 정부 들어 각종 논란에 휘말리며 주춤해진 상황이다. 예산 낭비 논란 속에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감사요구안이 가결되면서 감사원이 정밀감사를 진행 중이다.



한국의 대표 문화콘텐트인 한식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사업을 재정비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원장은 “이젠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라며 “그 핵심은 창의적인 식재료 발굴”이라는 조언을 내놨다. 지금까지 한식세계화가 한상차림 대신 코스요리를 개발하고 양식의 개념을 도입해 색다른 플레이팅을 하는 등 ‘형식’의 발전에 집중했다면 이젠 내용에 신경 쓸 때라는 얘기다.



22일 행사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기획됐다. 행사를 지휘한 배한철 인터컨티넨탈호텔 총주방장은 “해외에서 한식을 알리는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다양한 식재료를 개발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두 개 호텔 소속 300여 명의 셰프 중 60여 명을 모아 14개 팀을 꾸렸다. 미션은 특이한 식재료를 스스로 찾아 새로운 요리를 내놓는 것. 그 결과 나온 게 철갑상어 달래전 같은 요리다.



1 철갑상어를 포를 떠서 생선전으로 부쳐낸 ‘철갑상어 달래전’(작은 사진). 2 국화과 풀인 초석잠의 뿌리를 응용해 만든 ‘초석잠과 여주를 곁들인 랍스터 샐러드’(작은 사진).
철갑상어는 조선시대 백과사전 격인 『재물보』에 황어(黃魚)ㆍ옥판어(玉版魚)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물고기 박사’로 불렸던 고(故) 최기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94년 펴낸 『우리 민물고기 백 가지』에도 포함돼 있다. 궁중요리 전문인 장소영 경민대 호텔외식조리과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황어젓을 중국에 진상했다’는 대목이 나온다”며 “근대에 와선 잊혀졌지만 철갑상어가 조선시대엔 식재료 역할을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령 철갑상어가 토종 식재료가 아니라고 해도 양식이 되는 만큼 한식 식재료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음식 인문학』 등 저서를 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식 식재료라는 개념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전통적인 한식 재료뿐 아니라 한반도에서 재배되는 모든 식재료를 한식에 응용하고 그에 맞는 조리법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이젠 블루베리도 한식 식재료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십전대보탕 넣은 잡곡빵, 더덕 수프…

“삼숙이탕이라는 게 그렇게 맛있다던데….”

이 호텔 일식당의 최신영 셰프는 어떤 요리를 출품할까 고민하다 동료가 툭 던진 이 말에 주목했다. 삼숙이는 쑴벵이과 생선으로 경기도에선 ‘삼식이’ 경상도에선 ‘수베기’라고 불리는 ?삼세기?다. 강원도 삼숙이탕은 향토 미식가들 사이에서 별미로 꼽힌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부터 인천 소래포구 등 인근 시장을 샅샅이 뒤졌지만 삼숙이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때부터 한 달간 강원도를 중심으로 어항을 돌며 ‘삼숙이 찾아 삼 만리’를 시작했다. 휴일을 쪼개 강릉 안목항이며 속초 등지를 돌았다. 교통사고가 날 뻔하기도 하고 부인에겐 “바람난 거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포기할까 생각할 때쯤 속초 중앙시장의 한 할머니가 차린 좌판 고무대야에서 삼숙이를 찾아냈다.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한 뒤엔 어울리는 재료와 조리법을 궁리했다. 시행착오 끝에 전복을 곁들인 매운탕으로 내놨다.



최 셰프는 “전국 전통시장을 다녀 보니 상상도 못한 식재료가 넘쳐났다. 나라는 넓고 식재료는 많더라”며 “우리가 너무 틀에 박힌 식재료만 사용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번 탐험에서 접한 ‘열갱이’ ‘도치’ 같은 생선도 적극 활용해 볼 생각이다.



발품을 팔지 않고 색다른 재료를 손에 넣은 행운의 팀도 있다. 양식 셰프들로 이뤄진 팀의 문진주 셰프다. 피곤해서 집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본 문 셰프의 장인이 “몸 보신하라”며 가져다준 ‘초석잠’에서 힌트를 얻었다.



초석잠은 국화과에 속하는 풀의 뿌리다. 소라나 고둥 같은 모양에 속은 우윳빛을 띠고 고구마 같은 식감을 갖고 있다. 올리고당이 주성분이어서 살짝 단맛도 난다. 문 셰프는 “초석잠이 장을 깨끗이 해 주고 뇌기능도 좋게 해 준다고 해서 주스로 갈아 마시기만 했는데 문득 샐러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삭한 식감이 샐러드와 잘 어울렸다.



여기에다 같은 팀의 서경훈?박선엽 셰프가 경동시장에서 찾아낸 ‘여주’도 곁들이기로 했다. 일본 오키나와 등지에서 ‘고야’라는 이름으로 즐겨 먹는 여주는 우리나라에선 한약재로 많이 쓰인다. 문제는 여주의 쓴맛이었다. 박 셰프는 “데치기도 하고 튀기기도 했는데 결국 쓴맛이 안 빠져 고민하다 양식 조리법을 응용해 우유에 담갔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게 ‘초석잠과 여주를 곁들인 랍스터 샐러드’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가까운 곳에서 해답을 구한 팀도 있다. 미역 튀각을 먹다 ?매생이와 설탕을 섞고 엿처럼 얇게 펴서 디저트 위에 올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정국진 셰프팀이다. 디저트 종류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한식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까 고민하다 흔히 있는 한식 재료를 양식으로 조리해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문제는 매생이의 짠맛. 수차례 실패 끝에 매생이를 물로 충분히 헹궈내 소금기를 뺀 뒤 칼로 다져 고운 가루처럼 만들어 쓰기로 했다. 오디를 갈아 무스로 만들고 그 위에 매생이 사탕을 올렸다. 정 셰프는 “한식 디저트도 각지에서 나는 토종 열매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며 “작은 바나나처럼 생긴 으름 열매 등을 활용한 디저트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십전대보탕을 넣고 발효시킨 뒤 잣ㆍ밤 등을 넉넉히 넣은 한방식 잡곡빵이며 더덕을 이용한 수프 등도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날 선보인 초석잠ㆍ삼숙이 같은 다양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건 과제로 남았다.



이에 대해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인 박찬일 셰프는 “모든 요리의 기본이 식재료인데 우리는 대형 경매 유통 시스템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마진이 많이 남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식재료만 제한적으로 유통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통구조를 대폭 손질해 시골장터로부터 무궁무진한 식재료들을 끌어들이는 게 장기적으로 한식세계화에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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