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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비밀번호 못 외우는 중2 아는 단어가 ‘엄마’뿐인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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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김민우(가명·15)군은 집 문 비밀번호를 못 외운다. 스마트폰에 저장한 번호를 확인해 문을 연다. 학교에서도 고민이다. 기억력 저하로 영어 단어를 몇 번씩 써도 외우질 못한다. 부모와 함께 찾아간 병원에서 김군은 “치매 전 단계”란 말을 들었다. 과거 일을 기억해도 최근 일은 기억 못하는 고령 치매 환자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김대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뇌가 어떤 사실을 일시 저장한 뒤 장기 기억으로 넘겨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퇴화된 것”이라며 “컴퓨터게임을 5세 때부터 해 온 게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고2 이진주(가명·18)양은 상위권 성적의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종종 학원 갈 시간을 잊었다. 엄마가 조금 전 얘기한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는 딸이 일부러 그러는가 싶어 처음엔 야단을 쳤다. 그러나 이양의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짜증을 부리자 병원을 찾았다. 서울대병원 윤대현(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공부 경쟁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다 친구들과 카카오톡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점차 잠도 안 자고 스마트폰을 하게 됐다. 스마트폰이 지친 감성을 위로해 주는 듯하지만 일시적일 뿐 뇌가 지쳐 관계 예민도가 증가하고 집중력이 저하됐다.”

#6세 박주호(가명)군은 ‘엄마’란 단어 외에 다른 말을 못한다. 네 살배기 남동생보다 발달이 늦었다. 눈맞춤이 잘되지 않고, 장애물을 잘 넘지 못했다. 주호는 스마트폰을 주면 누가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그것만 응시했다. 병원 진단 결과 어릴 적부터 TV·비디오 등 디지털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게 주요인으로 꼽혔다.

디지털 시대의 역습인가. 현대인에게 없어선 안 될 디지털 기기지만 그로 인한 질병과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디지털 치매’, ‘유사자폐’, 인터넷·스마트폰 중독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언어·발달장애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디지털 치매란 정보기술(IT)이 발달한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단어다. 2004년 국립국어원에 등재된 말로,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다 기억력·사회성 등이 떨어진 상태를 뜻한다. 독일의 뇌 연구가 만프레드 슈피처 박사는 저서 ?디지털 치매?에서 “한국 학자들이 처음 발표한 말로, 기억력 장애와 감수성 약화를 겪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유사자폐란 후천적으로 생후 초기(3세 이하) 양육자와 정상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실패해 발생하는 병이다. 너무 오래 학습영상물 등을 혼자 보도록 방치할 때 나타나는데 ‘유아비디오증후군’으로도 불린다.

‘팝콘 브레인’(게임·동영상 같은 빠르고 강한 정보엔 반응하나 현실처럼 느리고 약한 자극엔 반응을 안 하는 뇌), ‘닌텐도 증후군’(자극성이 강한 전자오락에 몰입하면서 생긴 광과민성 발작현상)이란 용어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로 인한 발병 현황과 치료 방식 등은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한창 뇌가 발달해야 할 청소년에게 디지털 기기가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2011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5~9세 아동의 인터넷 중독률은 7.9%, 10~19세 청소년 중독률은 10.4%였다. 20~49세 성인 중독률(6.8%)보다 훨씬 높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생 30만239명을 조사한 데 따르면 6.5%(1만7448명)가 ‘스마트폰 과다 사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며 화내는 금단증상을 보이거나 수면시간 감소, 만성피로감 등을 호소하는 경우다.

20~40대 가운데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다 감각이 떨어져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학계에 따르면 어떤 이들은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자주 가는 길도 못 찾고, 노래방 기기 없이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계산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전화번호를 듣고 몇 초 만에 잊어버려 되묻고, 금방 소개받은 사람의 이름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극히 드물지만 이 중 일부는 이른 나이에 치매 진단을 받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치매 환자 현황’에 따르면 20~40대 치매 환자 수는 2008년 1160명에서 2012년 1585명으로 늘었다.

가천대 길병원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는 “디지털 기기는 소모적인 단순 정보를 기억하는 데 드는 정신노동을 대신해 주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여력을 방치하면 기억력이나 인지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일현·류정화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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