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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더 빛난 붓끝, 추사의 흔적을 찾아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의 묘.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위치해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6개월 여에 걸친 진통 끝에 개발한 새로운 문화재 안내판을 지난해 9월 이곳에 설치했다.
열 개의 벼루 밑을 뚫고 1천 자루의 붓을 망가뜨려 다다른 예술혼의 경지 ‘추사체’. 그리고 그 추사체를 9년간의 유배생활에서 집결시킨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 추사체라는 독창적 서체와 함께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 시, 산문에 이르기까지 학자이자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김정희는 금석학과 전각(篆刻)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기술을 드러내며 천재라 추앙 받은 인물이다.



제주 유배 중 추사체·세한도 탄생
아모레퍼시픽, 유배지·고택 챙겨
디자인 확 바꿔 종합안내판 등 제작

 연경학계의 원로이자 중국 제일의 금석학자였던 옹방강(翁方綱·1733~1818)은 그의 비범함에 대해 “경술문장 해동제일”이라 찬탄했고 청나라 학자 완원(阮元·1765~1848)은 그에게 완당(阮堂)이라는 애정 어린 아호를 선사했다.



 19세기 김정희는 옹방강, 완원과 같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당시 최고조에 이른 고증학의 진수를 연구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김정호 연구가였던 후지츠카는 훗날 이들의 만남을 가르켜 한중문화 교류사의 역사적 사건이라 평하기도 했다.



 천재 김정희에게도 고난은 찾아왔으니 바로 제주도로의 유배였다. 김정희가 44세이던 1830년 당시 요직을 섭렵했던 부친 김노경은 1830년 어지러운 정국과 정쟁의 파고 속에서 탄핵받는 일이 발생했고 김정희는 꽹과리를 치며 부친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8년이란 세월이 흘러 김노경은 세상을 떠났고 김정희는 그 이듬해 병조참판에 오르며 훈풍을 타는가 했다. 하지만 그 풍세는 곧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김노경을 탄핵했던 안동 김씨 세력들이 김정희 몰락에 나선 것이다.



 혹독한 고문 끝에 김정희가 닿은 곳은 제주도 서남쪽에서 80리나 떨어진 대정현. 그 곳에서 김정희는 위리안치(圍離安置)라는,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둬지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는 유배형 가운데에서도 가장 혹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년 동안 제주도에서의 귀양살이를 견딘 김정희는 이 시기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데, 바로 쉬지 않고 붓을 잡는 일에 매진하며 창조 재능을 집결시킨 것. 그의 예술혼이 경지에 오르자 오늘날 우리나라 문인화 중 최고의 걸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세한도’가 완성되기 시작했고 흔히 추사체라 불리는 글씨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국보 180호의 수묵화 세한도는 김정희가 그의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통역관이던 이상적은 유배된 스승 김정희를 위해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 서적들을 구해 보내줬고, 김정희는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을 보며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뜻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가 그 것이다. 제주도에 몸이 묶인 김정희가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곤 그림을 그려 보내주는 일뿐이었고, 그가 59세이던 1844년 이 공자의 말을 세한도라 이름 붙인 그림 한 장과 함께 전하게 된 것이다.



 1849년 9년간의 유배를 끝으로 귀양에서 풀려난 김정희는 서울 용산에 터를 잡았지만 다시 모함을 받아 1851년 북청으로 유배 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칠십 평생 벼루 10개, 붓 1000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김정희는 경기도 과천의 한 도처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19세기 최고의 예술가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와 고택, 묘 등을 지키기 위해 나선 기업이 있으니 바로 아모레퍼시픽이다.



 문화재청과 지난 2006년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은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9월 약 6개월에 걸쳐 개발한 문화재 안내판을 충남 예산군에 위치한 김정희 선생 유적지 일대(충남 기념물 제24호)에 설치했다. 이는 아모레퍼시픽이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 이래 지속해 온 ‘주요 유형별 문화재 안내판 디자인 개선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4월 기존 안내판의 디자인 개선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활동이다. 사업비 전액은 아모레퍼시픽이 부담했다.



 아모레퍼시픽이 개발 및 설치한 안내판은 짙은 회색의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져 추사 유적지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도록 했고, 주변 환경에 잘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항공기 소재로 쓰이는 두랄루민(Duralumin) 합금을 소재로 택했다.



 또한 독창적인 추사체를 만들어 중국,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쳤던 추사의 생가라는 점에 착안해 먹 번짐을 형상화한 모양을 안내판 하단에 투조(透彫)하며 외형 디자인에도 비중을 뒀다. 어려운 용어가 가득했던 기존의 안내판 역시 유적지의 각 장소에 얽힌 여담들로 채우며 관람객들이 추사의 정신과 일생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안내판은 추사 유적지 전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안내판을 비롯해 김정희 선생 고택(충남 유형문화재 제43호), 김정희 묘(충남 문화재자료 제188호), 월성위 김한신 묘(충남 문화재자료 제189호), 화순옹주 홍문(충남 유형문화재 제45호), 예산 용궁리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등 추사와 인연이 깊은 장소들에 설치됐다.



 박지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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