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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그들, 18년 후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나의 노화(老化)는 종종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노화를 통해 확인된다. 1990년대 학번들에게 영화 ‘비포(Before) 시리즈’는 그런 친구 중 하나다. 95년 나온 1편 ‘비포 선라이즈’에서 한없이 상큼했던 우리의 제시(에단 호크)가 2004년 개봉한 2편 ‘비포 선셋’에서 폭삭 늙은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란! 지난 22일 개봉한 완결편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역시 보고 나오면서 거울을 찾게 되는 영화다. 청순의 대명사였던 셀린느(줄리 델피)의 넉넉해진 체형과 주름진 얼굴에, ‘나도 변했겠지’ 덜컥 겁이 나서다.



 여행 중 기차에서 만난 20대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비포 선라이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청춘이 ‘유레일 즉석만남’의 희망을 품고 유럽으로 떠났던가(드물게 성공담이 들려오긴 했지만, 대부분은 ‘내 옆자리=노인지정석’의 슬픈 법칙을 확인해야 했다는 후문이다). 빈에서 6개월 후를 기약하고 헤어진 두 사람이 9년 만에 파리에서 재회하는 내용을 담은 ‘비포 선셋’을 보고 나서는, "제시는 왜 애 아빠가 돼서야 찾아온 거냐”며 친구들과 공분했다. ‘비포 미드나잇’은 그로부터 9년 후의 이야기다. 파리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우여곡절을 거쳐 쌍둥이 딸을 키우는 40대 부부가 되어 있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 [사진 에이블엔터테인먼트]
 ‘미드나잇’ 편에는 1편의 풋풋한 설렘도, 2편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망설임도 없다. 여전히 셀린느는 겁 많은 비관주의자고 제시는 냉소적인 몽상가지만, 둘은 이제 탐색이 필요 없을 만큼 익숙해졌다. 미덕이라면 동거와 육아라는 체험을 거쳐 더욱 농밀해진 두 사람의 대화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그리웠을 ‘롱 테이크 대화장면’이 아름다운 그리스 해변마을을 무대로 배부르게 펼쳐진다. 하지만 복잡해진 삶과 식어가는 열정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이들의 대화는 이내 부부싸움으로 번진다. 시리즈에 처음 등장하는 둘의 처절한 싸움은 낭만적인 선택의 결말에 대한 관객의 환상을 부순다. “이게 리얼이야. 완벽하지는 않아.”



 그러나 동시에 이 이야기는 진정한 판타지의 완성처럼 보인다. 기차에서 “같이 내리자”는 남자가 20대의 판타지였다면, “그날의 모든 걸 기억하려고 책으로 썼다”며 찾아온 옛사랑은 30대의 판타지다. 그리고 이제 40대가 된 셀린느의 옆에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홀 패키지(whole package)로 받아들였다”고 말해주는 남자가 있다. 그런 셀린느가 부러워서였을까. 1, 2편에서 그토록 공감했던 셀린느의 불안과 까탈스러움이 3편에서 유독 거슬렸던 이유는.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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