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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69) 83년 북한 아웅산 테러

1980년 9월 29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나란히 앉은 고건 당시 교통부 장관(왼쪽 셋째)과 서석준 상공부 장관(넷째). 남덕우 국무총리가 가운데 앉아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대통령을 간선으로 뽑고 임기를 7년 단임으로 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서 전 장관은 83년 7월 경제부총리 자리에 올랐지만 석 달 후 미얀마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 때 순직했다. [중앙포토]


미국 하버드대 생활에 한창 익숙해져 가던 1983년 5월께 주미 한국대사관의 무관(武官)인 노 소장(少將)의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 요청대로 한국 왔다면 나도 아웅산에서…



 “대통령께서 잠시 들어왔다 가시라고 합니다.”



 한창 강의와 세미나를 듣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당장 한국으로 오라는 뜻은 아닐 거라고 나름대로 짐작을 하고 답했다.



 “학기가 끝난 후 7~8월에 들어가 뵙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상공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러 미국에 가 있던 서석준도 비슷한 시기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83년 7월 6일 전두환 정부에서 개각 발표를 했다. 서석준 전 장관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됐다. 최연소(45세) 경제부총리였다. 대사관에서 온 연락의 의미를 그때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7월 말 한국으로 갔다. 2개월여 전에 미뤄 뒀던 전두환 대통령과의 독대 날짜가 잡혔다. 장세동 대통령 경호실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오전 11시30분에 경복고등학교 앞으로 오십시오.”



 약속시간에 맞춰 경복고 앞에 갔더니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를 따라가니 청와대 경호실 숙소였다. 숙소를 통과하니 안가가 나왔다. 내가 청와대 수석을 할 때도 거기에 안가가 있는지는 몰랐다. 내밀한 장소였다.



 전 대통령과 단둘이 식사를 했다. 막국수가 나왔다. 그때 한창 유행하기 시작한 음식이었다. 전 대통령이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전국을 다니면서 민심 동향도 살피고 해서 주기적으로 나한테 보고해 줬으면 좋겠어요.”



 전 대통령은 내가 이미 유학을 끝내고 한국으로 완전히 들어왔다고 잘못 안 것 같았다. 난 공부를 당분간 더 할 생각이었다. 말 그대로 잠시 들렀다 가라는 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완곡하게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 난 기사를 보셨습니까. 거기에 새 정부가 내각제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실렸습니다.”



 “어, 그래. 난 못 봤는데.”



 “그런 추측 기사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 고 아무개가 1년 계획으로 하버드대로 간다고 했다가 도중에 들어와서 국내를 돌아다닌다고 하면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기사가 사실 아니냐는 오해도 받고 부작용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 그건 그렇네.”



 “계획했던 하버드대 수업기간이 끝나면 한국으로 들어오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세요.”



 전 대통령은 논리적으로 얘기하고 설득하면 받아들였다. 그의 장점이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마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얼마 후 보스턴에서 비보를 들었다. 미얀마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폭탄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친구들인 김재익·서석준·이기욱이 순직했다. 한국 경제를 일으킬 재목들이었는데….



 한없이 비통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서늘했다. 5개월과 3개월여 전의 일이 생각났다. 전 대통령의 요청대로 미국 유학을 중간에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왔다면 나도 아웅산에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보스턴 커먼 공원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아쉽게 스러져 간 친구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2000년 5월 고려대 정책대학원의 ‘제1회 정책인 대상’에서 행정 부문 수상자로 내가 선정됐다. 고(故)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부문 수상자였다. 시상식에서 상을 대신 받으러 나온 김 전 수석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만났다. 17년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수상의 기쁨만큼 ‘김재익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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