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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틈타 민족·종교 갈등 폭발 … 길 잃은 미얀마의 봄

지난달 24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주 메이크틸라에서 종교 분쟁으로 인해 거주지를 잃은 이슬람교도 어린이들이 난민 캠프에서 나눠주는 식량을 배급받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이 지역에서 불교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분쟁으로 43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메이크틸라 로이터=뉴시스]

지난달 말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옥칸 마을. 이슬람교도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 마을에서 흘라 마인트는 넋을 잃은 채 불타는 자신의 집을 바라봐야 했다. 부유하지는 않아도 평화로운 삶을 꾸려왔던 그는 불교도들의 습격으로 순식간에 집을 잃었다. 마인트의 아홉 가족은 두려움에 떨며 들판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 무렵 중부 시트 크윈 지역의 불교도 카마인다는 악에 받쳐 있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바미얀 석불 파괴는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가 이슬람교도에 대한 약탈에 앞장선 이유다. 그는 “소수(이슬람 교도)가 욕보인다면 다수(불교도)도 참을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외신들이 전하는 미얀마의 현실이다. AP는 “미얀마가 유언비어와 절망, 분노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미얀마의 봄’이 오히려 민족·종교 분쟁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는 2011년 4월 군 출신인 테인 세인 대통령의 민선 집권 이후 참정권 확대, 언론·집회의 자유 허용, 민간 신문 발행 등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억눌려온 카친족·로힝야족 등 소수 민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주류인 버마족(불교)과의 갈등을 피해 가기 어려웠다.

언론·집회 자유에 135개 민족 제 목소리

 2011년 북부 카친주에서 정부군과 카친족 반군 교전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이 본격적인 갈등의 시작이었다. 지난해엔 서부 라카인주에서 불교도들이 로힝야족 이슬람교도와 분쟁을 일으켜 180여 명이 사망하고 14만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3월 만달레이주 메이크틸라에서도 43명이 숨지고 86명이 다쳤다.

 대부분의 충돌은 불교도가 이슬람교도 등 소수 종교를 가진 민족을 공격하는 양상이다. 정부가 직접 소수민족을 무력 진압한 과거와 달리 민주화 이후에는 군·경찰의 방조 속에 민병대가 약탈·방화·학살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지난 3월 메이크틸라 사태의 경우엔 상권을 쥔 이슬람교도에 대한 불교도의 반감까지 가세했다. 종교 분쟁이 경제·사회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한 것이다.

 미얀마에는 인구(6240만 명)의 68%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포함해 135개 민족이 존재한다. 샨족·카렌족·라카인족 등이 대표적이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에도 100여 개의 소수민족이 있었지만 건국 후 인도·방글라데시 등 이웃나라 노동자들이 들어오며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건국 영웅 아웅산(1915~47) 장군은 독립 직전인 47년 샨족·카친족 등과 ‘핑롱협정’을 맺고 소수민족 자치 허용을 통한 연방제를 내세웠다. 하지만 소수민족과의 공존을 꿈꾼 그가 암살된 뒤 군부 독재가 들어서며 자치는 금기어가 됐다.

다수파 불교도, 민병대 꾸려 타종교 습격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을 통합 대상이라기보다 국가의 단합을 막는 걸림돌로 봤다. 특히 종교가 다른 소수민족에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군부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들이 내세운 ‘무력을 통한 궤멸’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 각인돼 있다.

 일상화된 분쟁은 미얀마를 시험대에 올렸다. 민주화로 자유가 확대됐지만 치안은 불안해졌다. 언론 자유가 강화되며 동일한 사건도 자기 민족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왜곡 전달이 일상화됐다. 윈 미야잉 라카인 주정부 대변인은 AP와의 인터뷰에서 “민족·종교 분쟁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가로막아 국가가 혼란에 빠지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세인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국민 통합’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국론 분열은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3월 “미얀마의 빛나는 스타가 대중들에게 빛을 잃어가고 있다”며 수지 여사가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지 여사를 억압했던 미얀마 군부가 카친족 등을 유혈 진압했는데도 수지 여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침묵을 지킨다는 지적이었다.

 민주화 진전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미얀마의 ‘민주화 역설’엔 서구 사회의 모순적 태도도 한몫했다. 군부 독재 당시 소수민족 탄압을 문제 삼던 서구가 미얀마 현 정부에 대해 더 이상 압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은 자원 부국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미얀마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소수민족 억압을 못 본 체하고 있다.

 미얀마발 종교 갈등은 주변국에 도미노처럼 퍼질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종교가 혼재한 데다 정정 불안이 여전하다. 불교·이슬람교·기독교의 갈등이 확산될 경우 중동에 맞먹는 화약고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카친·로힝야족 수난 … 이웃나라로 불똥

 특히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제마 이슬라미야(JI)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국지적 분쟁에 개입할 경우 ‘지하드(성전)’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3일 수백 명의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도가 수도 자카르타의 경찰서 앞에서 지하드를 외쳤다. 이들은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도가 학살된 데 반발해 미얀마 대사관 폭탄 테러를 계획하다 체포된 청년 두 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전통적으로 미얀마와 동남아 패권을 두고 다퉜던 태국도 긴장하고 있다. 태국은 90년대까지만 해도 미얀마를 견제할 목적으로 미얀마에서 탈출한 소수민족을 대부분 수용했다. 하지만 이제 지나치게 많아진 이들이 미얀마 내 분쟁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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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