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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울 간직한 정겨운 동네 속속들이 엿보다

1, 2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의 옥인동 집. 한옥을 별채로 사용한다.
“어서들 오세요. 마침 모란이 활짝 피었을 때 오셨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 46-1. 약간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이곳은 건축가 김원(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씨의 집이다.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집이라기엔 동네와 건물 모두 꽤나 소박했다. 아담한 양옥 한 채와 마당, 세 칸 한옥이 전부다. “살아보니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곳이 최고예요. 그래서 전 건물보다는 마당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 마당은 전통 조경의 마지막 장인으로 불리는 고(故) 김춘옥 선생이 설계했어요. 가지런히 다듬은 서양식 정원이 아니라 철마다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자유로움이 특징이지요. 김 선생이 저처럼 게으른 사람한테 딱 맞는 마당이라고 하더군요. 산수유나무·살구나무·앵두나무·감나무·은행나무에 모란이나 작약까지 사시사철 피고 집니다.”

이날 김 대표의 집을 찾은 손님 20여 명은 ‘오픈하우스 서촌’ 행사(4~12일)에 참가한 일반인이었다. 이들은 한옥에서 소담하게 차려진 떡과 과일, 차와 커피 등을 대접받았다. 30여 분간 “집은 최소화할수록 좋다”는 김 대표의 건축 철학 얘기도 들었다. 열어젖힌 창호지 문 너머로 비 갠 후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이었다.
“26년 전 인왕산이 마주 보이는 이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매물로 나와 있지도 않은 걸 2년을 기다려 사게 됐지요. 낡은 집 뼈대를 남기고 개·보수했고 수몰 지역에 있던 한옥을 옮겨 와 별채로 삼았습니다.” 집주인의 남다른 집 얘기에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픈하우스 서촌’은 서촌(西村) 지역 건축·디자인·미술·영화 분야의 문화예술인, 식당과 카페 운영자들이 각자의 공간 20여 곳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일종의 집들이 행사다. 서촌은 통의동·통인동·누하동·옥인동·효자동 등 인왕산과 경복궁 서쪽 사이 15개 동을 일컫는 명칭. 몇 년 전부터 문화예술인들과 개성파 술집·식당 등이 모여들면서 문화동네가 형성됐다.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느슨한 유대를 맺어오던 중 “우리 동네의 매력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한 번 마련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올해 처음으로 이 행사를 기획한 건축전문기자 임진영씨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점점 늘어나는 현대 도시에서 잠시나마 사유공간을 여럿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상업 공간을 비상업 공간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3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장소였던 누하동 한옥. 4, 5 건축가 조병수씨의 사진 전문 갤러리인 창성동 온그라운드 스튜디오. 천장을 기와 대신 유리로 덮었고, 집 한가운데 마당을 꾸몄다.
6 황두진건축사사무소 황두진 소장의 자택 겸 사무실인 통의동 목련원. 박영채 작가 제공.
김원 대표나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건축가 황두진·서승모씨 등이 자신의 집이나 작업실 등을 개방하는 데 흔쾌히 동참했다. 황두진 소장은 자택인 통의동 목련원 지하에 12일 노래방을 꾸몄다. 20대 손님들이 ‘7080’을 상징하는 아바의 노래를 열창하고 중년 손님들은 흥얼거리는 훈훈한 풍경이 펼쳐졌다. 창성동 술집 퍼블릭에선 4일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가 열렸고, 효자동 이탈리안 식당 두오모는 8일 오후 네 시간 동안 북카페로 변신했다. 서승모 소장은 8일 효자동 자택에서 일본 교자(만두) 빚기 강의를, 칼럼니스트 박사·이명석씨는 11일 통의동 ‘이상의 집’에서 마작 교실을 열었다. 조병수 소장은 10일 건축 전문 갤러리인 온그라운드스튜디오를 개방했다. 이 건물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이었던 집을 사들여 개조했다. 헌책방 가가린과의 사이 벽을 뚫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한 점이 인상적이다. 문화컨설턴트·그래픽디자이너·출판디자이너 등 젊은 예술가들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했다.

서촌에 이미 흠뻑 빠진 사람들이 주인장들이라면 손님들은 서촌의 매력을 이제 갓 발견했거나 더 깊숙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이날 김원 대표의 집에 동행한 칼럼니스트 박사씨는 태어나 초등 3학년까지 살았던 동네의 정겨운 기억을 잊지 못해 얼마 전 다시 서촌으로 이사왔다. “동네 시장에서 아저씨들이 깨소금이랑 어묵 집어주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사방에서 현대식 건물이 올라가는 가운데에서도 ‘옛날 서울’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게 서촌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같은 날 오후에 진행된 ‘서촌 어슬렁’에 참가한 사람들도 ‘서촌 예찬론자’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은 강남이지만 주말엔 서촌에서 논다”며 하루 휴가를 내고 왔다는 직장인, “영화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옛집이 궁금해 친구랑 왔다”는 주부, “서촌의 좁은 골목길이 정비되지 않고 그냥 서울의 명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60대 남성 등 다양했다. ‘서촌 어슬렁’은 평지가 많아 산책하기 좋은 동네의 장점을 여러 사람과 나누려는 옥인동 주민이자 한국실내건축가협회 이사인 박민영씨가 마련한 프로그램. 사직단에서 출발해 단가(短歌)로 유명한 고(故) 손호연 시인의 집, 영화 ‘건축학개론’ 속 서연과 승민의 비밀장소였던 누하동 한옥, 인왕산을 품에 안을 것 같은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박씨의 옥인동 자택 옥상, 인왕산 숲길을 거쳐 지난해 새롭게 단장한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에서 끝나는 여정이었다.

앞으로 부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인 ‘오픈하우스 서촌’은 해마다 뉴욕에서 열리는 건축 축제 ‘오픈하우스 뉴욕’에서 단초를 얻었다. 해당 지역 거주민들이 직접 안내를 한다는 점, 문화와 예술 등 컨셉트가 있다는 점, 오픈하우스를 하는 주체들이 그곳에 살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식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여느 지역 답사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임진영씨는 “천편일률적인 관광·답사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서촌 거주자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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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