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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기억하는가

채인택
논설위원
얼마 전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였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사돈댁 분들도 함께했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자녀를 이끌고 배를 올랐던 부모 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월남 1.5세대들은 아무도 고향 뒷산이나 피란민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시절은 이제 너무도 아득하다.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올해로 60년이다. 정전협정은 7월로 환갑이다. 전쟁을 견뎠고 가난까지 이겼어도 세월은 당하지 못한다. 동란에서 살아남은 세대는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다. 전란의 기억도 갈수록 어슴푸레해지고 있다. 하지만 60년은 잊기에 너무 짧다. 내년에 발발 100주년을 맞는 제1차 세계대전을 보자. 백수를 누린 마지막 생존자들이 몇 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이젠 누구도 이 전쟁을 직접 증언해줄 수 없다. 그래도 전장이던 유럽에서 이 전쟁은 결코 잊힌 역사가 아니다. 그 흔적은 곳곳에 생생히 살아 있다.

 영국 런던 시내의 워털루역. 대리석으로 만든 입구를 오르다 보면 벽면에 이 역에서 근무하다 1차 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직원의 명단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오래된 역은 한결같이 이렇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런던 남부의 명문 덜위치 칼리지를 찾았다. 이 학교는 강당 기둥에 전몰자 이름을 새겨놨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교직원과 학생이 나란히 전선으로 달려 갔던 역사와 전통을 조회나 행사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를 비롯한 19명의 총리를 배출한 이튼 칼리지는 물론 전쟁 당시 존재했던 거의 모든 영국 학교엔 이런 명단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인터넷 시대 이후론 학교 웹사이트에 유명 동문과 함께 전몰 동문 명단을 나란히 올리는 게 일반화됐다. 대학 입시 결과만큼 나라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모든 걸 바친 젊은이들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남부 프로방스 지역을 한참 동안 다닌 적이 있는데 새로운 마을에 들를 때마다 입구에 십자가로 여겼는데 비석 같은 게 보여 의아했다. 마을 표지판인 줄 알고 보니 이 동네 출신 전사자 추모비였다. 빛바랜 면에는 1차 대전, 다소 생생한 다른 면에는 2차 대전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생몰연대가 드러내는 나이가 너무 어려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전사자 추모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공동체를 지키려다 목숨을 바친 전사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은 결코 멈춰선 안 된다. 그래야 역사에 대한 존경심이 이어지고 거기서 배우는 게 있다.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후대에 그 교훈을 물려주는 방법으로 이만한 게 없을 것이다.

 지난 4월 30일 부산 동대신동의 경남고교 교정에선 6·25전쟁 전사 동문 추모비인 ‘성찰의 집’ 제막식이 열렸다. 철판 벽과 흰 자갈바닥, 그리고 칼집을 내서 순국의 역사를 상징한 가로 237㎝, 세로 120㎝, 높이 53㎝의 바위로 이뤄졌다. 동문인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했다. 철판 벽에는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장에서 쓰러져 끝내 구덕산 모교로 돌아오지 못했던 동문들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기억한다”라는 글을 새겼다.

 이 학교 동창회는 50년대의 빛바랜 동창회보, 학도병 명단 등 숱한 자료를 뒤지고 참전 동문의 증언을 모아 32명의 전사 동문 명단을 확인했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다 돼가는 이제야 교정에 추모비를 세우고 전사 동문 명단을 정리했느냐는 지청구를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학교 차원에서 이 같은 6·25전쟁 전사자 추모사업을 벌인 곳은 드물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이를 때다. 올해 정전협정 60주년을 계기로 학교·직장·마을·지역 등 다양한 단위에서 민간 추모시설을 설치하는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문중 차원에선 전사자를 찾아 족보에 정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민간 차원의 추모사업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거기에 보태 정부기관별 전사·순직 직원을 찾아 기리는 사업도 해봄 직하다. 나라를 수호하는 일은 국방부만 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이 나서서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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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