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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환갑잔치 스폰서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14일 60주년 기념 리셉션을 했다. 행사의 영어 공식 명칭에는 작심하고 ‘Hwangap(환갑)’이란 말을 넣었다. 잔치는 유쾌했다. 귀빈들이 기념 떡을 자르도록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사회자는 ‘하나, 둘, 셋’ 대신 ‘하나, 둘, 둘 반…’을 외쳤다. 장관이 두 명이나 와 있었던 자리였다. 미국식 위트에 딱딱했던 분위기는 일순 부드러워졌다. 한국식 행사와 가장 달랐던 것은 스폰서(후원 기업) 광고였다. 에이미 잭슨 암참 대표는 개회사를 하며 21개나 되는 후원 업체를 하나씩 호명했다. 객석은 박수로 답했다. 행사장 곳곳엔 해당 기업의 광고가 붙었다. 참석자들은 잔치가 누구의 힘으로 마련됐는지를 모두 알고 돌아갔다.

 사실 이날 행사의 축사는 겉돌았다. 양국 인사 8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다. 그러나 방미 성과에 대한 설명이 길어질수록 윤창중씨의 얼굴이 더 크게 떠올랐다. 기가 막힌 순간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는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셀프 사과’가 내게는 목구멍 가시처럼 걸렸다. 누가 주인인지, 누가 밥상을 차린 건지를 잊은 것이다. 곁다리 같은 문제를 되짚는 건 이게 실수가 아니라 의식 깊숙이 내재한 것이어서다. 스폰서를 호명하고, 손뼉 치고, 대접하는 건 이벤트가 아니다. 오랫동안 쌓이고 체화된 문화이자 사고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정부 부처 고위직의 방에 가면 책상 위 유리판 밑에는 조직도가 있다. 장관이 맨 위에, 차관이 그 아래에, 실·국장이 그 밑에 있는 형식이다. 익숙한 피라미드형 조직도에 대한 생각이 깨진 건 몇 해 전 미국 연수를 갔을 때다. 영어 공부를 겸한 외국인 모임에서 각국의 정치 체제가 주제가 됐다. 모임을 이끄는 미국인 자원봉사자는 이왕이면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달라고 주문했다. 공교롭게도 참석자는 한·중·일 3개국 사람뿐이었다. 그림은 똑같았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맨 위에 있는 피라미드형 구조. 자리가 파할 무렵, 자원봉사자는 한마디 할 게 있다며 그림판을 들었다. 그리고 뒤집었다. 역피라미드형의 그림이 나타났다. 국민이 맨 위로, 대통령이 맨 아래로 자리바꿈을 했다. 머리로는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평범한 미국인 자원봉사자는 그림이 틀렸다고 직관적으로 인식했고, 나는 그때까지 피라미드형 그림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 정부뿐이랴. 기업도 마찬가지다. 회장·사장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형 구조만 머릿속에 있으니 ‘을(乙)의 항변’이 그저 껄끄러울 뿐이다. 혹 책상 위 유리판 밑에 피라미드형 조직도가 있다면, 거꾸로 돌려놓아 보시라. 가끔이나마 ‘거꾸로 조직도’가 자극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는 편이 ‘앞으로 회식 때 여직원은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야겠어’라고 다짐하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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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