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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변태들의 행렬은 길어진다

이규연
논설위원
충남 아산의 한 여고 주변. 며칠 전 ‘바바리맨’이 출몰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 남자가 학교 담장 주변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특정 부위를 만졌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이 소리를 지르자 사라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학기에 여학교를 휘저어 놓는 전형적인 변태 소동이다. 서울 용산구의 숙명여대 앞 골목도 바바리맨의 습격을 자주 받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4학년 자취생은 “매년 바바리맨 출몰 소식에 잔뜩 긴장한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한 대학생 기자가 변태 출몰 패턴을 분석해 인터넷에 올려놓았을까.

 첫째, 오전 8시30분~11시에 주로 출몰.

 둘째, 원룸보다 하숙 동네 선호.

 셋째, 골목에서 10~20대 여자를 노림.

 전국에서 매년 100명이 넘는 바바리맨이 잡힌다. 잡고 보면 대부분은 심신 미약·박약을 보이는 사회적인 약자다. 청와대 대변인이나 차관 같은 ‘울트라 갑(甲)’까지 변태 행렬에 올랐다는 추문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공인 변태의 여파는 소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동체·국가가 흔들린다.

 변태(變態)만큼 여러 뜻으로 쓰이는 단어도 드물다. 동물이 성장하면서 큰 형태 변화를 거쳐 성체가 되는 현상(생물학), 화학조성이 똑같은데 물리성질이 다른 물질(화학), 온도에 따라 결정구조가 달라지는 현상(공학) 등이다. 정작 우리는 과학적인 의미보다 세속적인 의미로 변태를 자주 쓴다. 세속적이기에 그 단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문헌을 찾아본다.

 단어의 세속적 탄생연도는 1921년이다. 종합월간지 ‘개벽’의 세태비평 코너 ‘은파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갑(값)은 비싸도 젊은 녀자(여자)가 팔면 산다… 그럴듯도 한 일이 젊은 녀자가 고흔(고운) 손으로 집어준다는 그것만으로 일종 만족을 느끼는 ‘변태’ 성욕의 소유자가….”

 당시 변태는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성적 취향을 보이는 X’쯤으로 쓰였다. 범죄보다는 도덕, 증오보다는 혐오의 대상으로 그려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의 전개양상은 변태들에게 불리했다. 도덕보다는 범죄, 혐오보다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신장한 여권은 변태 남성을 용서하지 않는다. 경증 변태까지 처벌 대상이 돼 왔다.

 바바리맨을 보자. 예전에는 경범죄 대상이었다. 1990년대에 형법상 공연음란죄 적용을 받는다. 지난해에는 상습적인 바바리맨에게 실형이 선고됐고, 올 들어서는 아동 대상 성노출범에게 강제추행죄까지 적용됐다. 음흉한 눈빛과 야한 대화는 어떤가. 형사적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1999년에 ‘직장 내 성희롱’이 법적 개념으로 등장하면서 회사에서 개망신을 당할 수 있는 변태행위에 편입됐다. 최근 ‘갑을 관계’가 주목을 받으면서 성희롱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출증과 함께 관음증은 대표적인 변태 행위다. 윤창중 스캔들 와중에 우리 상당수는 잠재적인 변태가 됐다. 다음은 대변인이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진 ‘5일간의 기록’이다.

 첫날, ‘윤창중 그녀’ 사진 한 장이 올라옴.

 둘째 날, 네 장으로 늘어남. 이름·경력·평판까지 달림.

 셋째 날, 당국 “그녀가 아니다”라고 비공식적 언급함.

 넷째 날, 다른 ‘진짜 그녀’라는 사진 한 장이 올라옴.

 다섯째 날, 이름·경력·평판 줄줄이 달림.

 스마트폰 사용자 중 상당수는 사진을 봤고 카카오톡을 통해 퍼날랐다. 집단 관음증을 보였다. 신상털기의 수준·속도·범위에 놀란 가슴들이 처벌법 제정을 요구한다. 지금 추세라면 변태의 근(近) 미래는 뻔하다. 변태의 확장, 처벌 대상 변태는 더 확장-. 그들이 아니라 너와 내가 대상이 될 수 있다. 별수는 없다. 생각·행동을 바꾸는 수밖에. 변태들의 행렬은 점점 길어진다. 줄을 지어 바다로 뛰어드는 나그네쥐 ‘레밍’ 떼가 떠오른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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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