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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공모전 제출 아이디어는 응모자 소유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봄이 되면 대학 캠퍼스는 수많은 공모전 포스터로 도배된다.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아이디어 공모전, 디자인 공모전, UCC 공모전 등 온갖 종류의 공모전을 앞다퉈 개최한다. 공모전 정보를 한데 모아 정리해 놓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매달 60~80개의 공모전이 열리고 있었다. 작은 공모전들까지 포함하면 연간 1000개 이상의 공모전이 한반도에서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

 공모전은 내부 직원 머릿속에선 나올 수 없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외부로부터 수혈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의 좋은 방식이다.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 공모전은 유익하다.

 대학생들은 공모전을 통해 비즈니스 현장에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미리 공유하고 해결해 보려 하니 좋은 간접체험이 아닐 수 없다. 친구들과 밤새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더없이 유익한 추억이 될 것이며, 입상까지 한다면 장학금도 받으니 일거양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유누들(Younoodle)처럼 최고의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 공모전의 형식을 제공하는 벤처회사가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공모전에 출품된 아이디어의 질은? 대한민국 공모전은 얼핏 활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만 들춰 보면 ‘비효율적인 홍보행사’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우선 공모전에 제출된 아이디어나 작품은 모두 주최 측의 소유이며 반환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모전에 제출할 바보는 많지 않다. 그나마 상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내 아이디어가 사후 어떻게 도용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개 공모전은 정말로 아이디어가 필요해 해당 부서가 주관해 진행하는 경우보다는 외부 홍보대행사나 인사팀이 홍보 차원에서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공모전의 성패는 아이디어 수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출품작 수, 응모자 수로 결정된다.

 필요한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뭔지도 모호하고 아이디어를 나중에 제대로 활용할 의지도 약한 경우가 허다하다. 공모전을 컨설팅해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형식을 고민하고, 제출된 아이디어를 성의 있게 심사하지도 않는다. 공모전 아이디어를 응모자와 함께 사후 더욱 발전시키는 프로세스는 대개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이디어가 필요해 공모전을 치르는 경우라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학생들의 값싼 노동력을 구매하려는 속내가 비치는 공모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이 성황을 이루는 것은 우리 사회가 ‘스펙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제출된 아이디어는 응모자의 것’이다. 공모전 심사위원은 심사 과정에서 보게 될 아이디어를 다른 곳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회사는 공모전을 통해 아이디어를 응모자에게 지적재산의 형식으로 구입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최대한 문제를 명확하게 기술하며 관련 부서에서 심사한다. 그들은 심사 후에도 응모자들과 워크숍 등을 통해 꾸준히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오픈 이노베이션’을 현실화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회사에 판 경험이 있는 젊은이는 이를 통해 취업뿐 아니라 창업을 할 때 벤처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공모전은 취업의 기회이면서 동시에 ‘창업의 전초전’인 셈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혁신을 이뤄 보겠다는 야심이 세상을 바꾼다. 가산점이나 이력서 한 줄을 위해 밤을 새우는 젊은이들의 머릿속에서 혁신이 싹틀 여유가 없다. 여러 공모전에 응모해야 입상 확률도 높으니 공모전 사냥꾼 같은 대학생들도 종종 나타난다. 가짜 사연들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어슬렁거리며 상품을 노리는 위장된 애청자처럼.

 그동안 공모전에 제출된 수많은 아이디어는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그중에는 간혹 반짝이는 것들도 있었을 텐데, 서류 더미들에 묻혀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어딘가에 처박혀 있진 않을는지. 역설적이게도 공모전들의 난립은 우리 사회가 아이디어를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공모전에 제출된 작품과 아이디어는 응모자의 것이다. 그들의 지적재산은 보호받아야 한다. 주최 측은 공모전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창안자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사후에도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비즈니스 혁신을 꿈꾸는 회사에, 그리고 사회혁신을 꿈꾸는 공공기관에 유익하다. 아이디어를 귀하게 여기는
곳에 아이디어가 모인다.

정 재 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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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