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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임을 위한 이름표

권석천
논설위원
사진 한 컷이 있다. 촬영된 시점은 지난 4월 12일. 장소는 청와대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당 설훈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왼편으로 문희상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박기춘 원내대표가 웃음 짓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두 사람 가슴에 직사각형의 물체가 달려 있다. 명찰이다. [사진]



 의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문 전 위원장과 박 원내대표는 왜 이름표를 달아야 했을까. 박 대통령이 제1야당을 대표하는 그들의 얼굴을 몰랐던 것일까.



 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았던 지난주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8일(현지시간) 수행 경제인들과의 조찬간담회 사진. 박 대통령 옆에 대기업 총수들이 앉아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들의 옷깃에도 줄줄이 명찰이 달렸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 박 대통령이다.



 이제 우리는 명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억을 되짚어 보자. 이름표를 다는 경우는 대개 세 가지다. 초·중·고교 학생이거나 군 복무를 할 때,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행사에서다. 학교나 군대에서 명찰을 붙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언제든 호명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라는 뜻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이 명찰을 달지 않는 자와 다는 자, 호명하는 자와 호명되는 자로 나뉘면 권력관계는 확연해진다. 명찰을 다는 자가 을(乙)이요, 달지 않는 자가 갑(甲)이다. 소수가 모인 자리에까지 명찰 부착을 요구하면 알게 모르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명찰요? 일종의 심기(心氣) 경호죠. 청와대에 들어가 명찰을 다는 순간 ‘아, 대통령을 만나는구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주눅이 들게 되는 겁니다.”



 “명찰은 필요악”이란 반론도 있다. 한 전직 청와대 비서관은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비표(명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참석자들끼리 서로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경호실 직원들이 참석자 얼굴을 몰라 실수할 수도 있고요. 비표만 체크하면 되니까 출결 관리하기도 편하고….”



 내부적 필요성이 있다 해도, 당사자들이 동의한다 해도 VIP 한 사람을 위한 경호와 의전은 권위주의로 비치기 마련이다. 빤히 얼굴이 알려진 정치인과 글로벌 기업 회장까지 대통령 앞에서 나란히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장면은 보기 민망하고 촌스럽다. 정치와 경제가 청와대에 예속된 듯한 인상이다. 그 어느 나라도 대통령·총리 테이블에 앉을 때 명찰을 차도록 하진 않을 것이다. 한 정치인은 “북한에서도 ‘접견 이름표’ 같은 건 없지 않느냐”고 지적한다.



 문제는 박 대통령 취임 후 명찰 관행이 더 심해지는 데 있다. 사진 DB를 뒤져봐도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회동에서 주요 정치인이 명찰을 달고 있는 사진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박 대통령도 당 대표 시절 신년하례식 등 일부 행사를 빼고는 청와대에서 명찰을 달지 않았다. 내 검색 능력의 한계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청와대에 물으려는 건 이것이다. 대규모 공개 행사가 아니라면 대통령도 참석자 얼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어렵다면 대통령 자신도 명찰을 다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 아닌가. 청와대 홍보수석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과문에 “대통령께 사과 드린다”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도 청와대의 1인 중심 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과와 명찰로 대통령을 구별짓는 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고 고립시키는 일이다. 보좌진 교체도 중요하지만 구시대적 관행을 고치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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