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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작가 피츠제럴드 '개츠비'로 칸에서 거듭나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데이지(캐리 멀리건), 데이지의 사촌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왼쪽부터). [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피츠제럴드
제66회 칸영화제가 15일(현지 시간) 개막한다. 개막작은 할리우드 영화 ‘위대한 개츠비’(국내 16일 개봉, 바즈 루어만 감독)다. ‘가장 위대한 미국소설’로도 꼽히는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동명소설을 사상 네 번째로, 그리고 3D로 스크린에 옮겼다.

44세로 숨진 원작자의 영화 인생



 원작은 1920년대 미국, 특히 대공황 직전의 경제적 풍요를 만끽하던 미국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주인공 개츠비의 사랑과 꿈을 그렸다. 하지만 원작자 피츠제럴드와 할리우드의 인연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피츠제럴드는 1940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질 때까지 3년 남짓을 아예 할리우드에 살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다. 이미 20대 초반에 소설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이지만, 1937년 여름 할리우드로 향할 때는 최악의 상태였다. 소설로 벌어들인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알코올 중독까지 겪고 있었다.



 그가 할리우드로 향한 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당시 할리우드는 감독, 배우는 물론 시나리오 작가도 전속계약을 맺어 주급을 지급하곤 했다. 피츠제럴드는 대형영화사 MGM과 전속계약을 맺고 각색·윤색 등 시나리오와 관련된 일이라면 다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주목을 받기는커녕 시나리오마다 번번이 제작이 무산되거나 아예 크레디트에서 이름이 빠지는 수모를 겪었다. 크레디트에 그의 이름이 오른 영화는 딱 한 편, 에리히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세 전우’(1938, 프랭크 보제즈 감독)뿐이다. 이마저도 제작자인 조셉 L 맨키위츠가 대대적으로 뜯어 고친 것이었다.



 빅터 플레밍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시나리오 작업도 했지만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939년 MGM과의 계약이 끝나자 자신의 단편소설 ‘다시 찾아온 바빌론’을 각색해 영화 ‘코스모폴리탄’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셜리 템플의 출연이 무산되면서 이 역시 제작되지 못했다. 당시의 영화 제작자들은 피츠제럴드를 두고 ‘문장을 이미지로 옮길 줄 모른다’고 불평했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는 건 위대한 조각가가 배관공으로 일하는 것과 같다. 그는 물을 흐르게 하려면 파이프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모른다.” 피츠제럴드가 할리우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명감독 빌리 와일더의 말이다.



 이런 푸대접을 보상이라도 하듯, 할리우드는 피츠제럴드의 사후 그의 소설을 열심히 스크린에 실어나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미완성 유작인 『마지막 거물』 등 여러 소설이 영화화됐다. 그 중에도 가장 많이 영화화된 건 『위대한 개츠비』다.



로버트 레드포드(왼쪽)와 미아 패로가 주연을 맡았던 1974년작 ‘위대한 개츠비’.
 1925년 출간된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1년 뒤 처음 영화화됐는데, 당시 피츠제럴드는 시나리오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가 주연한 1974년작까지 세 차례 영화로 옮겨졌지만 결과는 모두 신통치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세 편 중 아주 성공적인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고 평했다.



 새로 메가폰을 잡은 바즈 루어만 감독은 4월 말 뉴욕에서의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가 1920년대 그대로를 담은 시대극이란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새로움을 지금 관객들이 느끼길 바랬다”는 설명이다.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 U2의 ‘러브 이즈 블라인드니스’를 리믹스한 영화음악에 대해서도 “소설의 배경이 재즈시대로 불리는 1920년대지만, 재즈를 그대로 사용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들려줬다. 이번 영화음악은 제이지가 담당했다.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소감도 밝혔다.



 “칸은 내게 너무 특별하다. 칸영화제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그는 데뷔작 ‘댄싱 히어로’로 칸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이번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곳이 뉴욕과 칸이다. 모두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쓴 곳에서 멀지 않다. 피츠제럴드는 소설을 뉴욕 롱아일랜드, 그리고 프랑스 생라파엘에서 썼는데 칸 해변에서 30㎞쯤 떨어진 곳이다. 생라파엘에서 작업할 때 피츠제럴드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 그런 상황에서 쓴 소설이 90년쯤 뒤에 그 해변에서, 게다가 3D로 상영되는 걸 상상이나 했겠나.” 



장성란 기자, 뉴욕=이주사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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