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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名酒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술을 즐기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청와대 행사에서 술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많은 이가 걱정을 한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술을 국내외에 소개할 중요한 자리가 사라진다는 우려에서다. 청와대 국빈만찬이나 대통령 해외순방 중의 현지인사 초청행사는 사실 술을 포함한 한국 문화와 상품 브랜드를 소개할 소중한 기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통주를 비롯해 아직 덜 알려진 좋은 술이 한국에도 많다고 주장한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명주가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걸 적극적으로 알리고 마케팅을 잘해서 시장에서 성공하는 일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명주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시장의 혹독한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생존자다. 마케팅 스토리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하나의 드라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로 바이스비어(밀로 만든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의 맥주)의 명주로 통하는 독일 뮌헨산 ‘프란치스카너 헤페바이스비어’는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수도사가 고풍스러운 맥주잔을 들고 있는 상표로 유명하다. 이 상표는 중세 시절 발효를 포함한 식품산업 지식의 보고였던 수도원에서 비롯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인상은 소비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극적인 스토리를 연상하게 하며 믿음을 준다. 하지만 이 상표는 1920~30년대 유럽을 풍미했던 상업포스터 화가 루트비히 홀바인(1874~1949)의 작품이다. 홀바인은 우락부락한 분위기의 나치 프로파간다 포스터로도 이름을 날려 제2차 세계대전 뒤 점령군 미군에 체포됐다. 하지만 ‘점령군에 협조하라’는 홍보 포스터를 그리며 협조하는 대가로 미군은 그를 풀어줬다. 덕분에 그가 그린 3000여 점의 상업포스터도 폐기 처분을 면했다. 뛰어난 맛과 품질관리로 유명한 이 맥주 브랜드는 이런 스토리를 더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포도주인 도카치(十勝) 와인은 드라마 같은 탄생 스토리로 더 유명하다. 산지인 홋카이도(北海道) 도카치군의 벽촌 이케다마치(池田町)는 유명 포도산지도 아니었고 겨울이면 최저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는 극한지라 포도 재배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50년대 정장(동사무소장격)을 맡은 마루타니 가네야스(丸谷金保·94)는 포도주 개발로 가난한 농촌의 부흥을 모색했다. 일본 사회가 고도화되면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알칼리 음료인 포도주의 소비도 따라서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도주 양조법을 아는 사람이 없자 농업교사 출신의 지역 공무원 오이시 가즈야(大石和也)에게 5년치 월급을 한꺼번에 주며 독일 유학을 부탁했다. 독일 뮐하임에 파견된 오이시는 전쟁 직후 인력난에 시달리던 포도농장에서 일하며 양조법을 배웠다. 당시 해외 수출이 금지됐던 효모까지 몰래 가져올 수 있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독일에서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추위에 잘 견디는 포도 품종을 개발하는 등 10년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70년대 포도주 상품화에 성공했다. 소비자들은 이런 스토리에 열광하며 도카치 브랜드를 연 20억 엔어치 이상 소비한다.

한국에서 진정한 명주가 나오려면 맛과 향, 그리고 품질도 좋아야 하지만 명품 스토리 개발을 포함한 필사적인 마케팅을 거쳐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70~80년대 비디오 테이프 표준전쟁에서 기술이 앞선 소니가 마케팅과 제휴로 맞선 마쓰시타에 패배했음을 기억하자. 명품 판단은 시장과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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