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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놀이로 여긴 잘 놀던 사람들이 멋진 문화 만들다

1 인왕산 자락 아래에서 시회를 하는 여항인들의 밤모임을 묘사한 단원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 (松石園詩社夜宴圖)’(1791). 지본수묵 (紙本水墨), 25.6 x 31.8 cm. 개인소장. 사진 중앙북스
참 멋들어지게도 놀았다.

‘달이 어슴푸레하게 뜬 밤은 친구와 함께하는 탁주 한잔이 제격이다. 친구는 해금을 타고, 어느새 눈은 내려 뜰에 쌓인다. 음악을 들으며 서로 시를 짓고 즐거이 밤을 새운다. 그러고도 여흥은 사라지지 않아, 호기롭게 근처에 사는 이덕무를 깨우러 간다…’. 실학자 박제가가 묘사한 어느 겨울날 밤의 여흥이다. 지금의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어울렸던 까닭에 ‘백탑청연(白塔淸緣)’이라 스스로들을 이름하며 이 인연들을 귀히 여겼다.

놀이는 문화며, 시대정신이다. 잘 노는 사람들이 멋진 시대의 문화를 만들었다. 18세기 영·정조의 치세기는 사회 각층의 문화가 폭발하고 서로 아우러지는 시대였다. 4월 29일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18세기 한문서사의 영토’와 5월 6일 윤주필 단국대 교수의 ‘18세기 연희시가’ 강의는 시대를 풍미한 멋진 문화인들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자리였다.

임형택 교수는 18세기는 ‘위대한 시대’, 창조적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미술에서는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시대였다. 음악에서는 줄풍류와 가객, 시조창이 등장했다. 서울 출신의 중인 계층인 여항인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시사회를 통해 여항문학(閭巷文學)이 활성화된 도시 문화의 시대였다.

2 아이들 100명이 각기 놀이에 열중하는 그림 백자도(百子圖)는 그만큼 세월이 태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은 19세기 후반 제작된 ‘백동자도 10폭 병풍’ 중 부분. 서울 신사동 호림박물관에서 10일 개막한 ‘민화, 상상의 나라-민화여행’ 전에서 볼 수 있다. 사진 호림박물관
또한 이 시대는 이익ㆍ박지원ㆍ정약용ㆍ김정희 같은 ‘지금도 뛰어넘지 못하는 위대한 인문학자들’의 시대였다. 이들은 북학파의 실용주의적 정신으로 현실을 대했으며, 예술에 대해서도 탁월한 이해가 있었다. 대문장가 연암 박지원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홍대용과 더불어 외국에서 들여온 양금 연주법을 정리했다. 김홍도의 자화상은 그가 화가일 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 등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가진 르네상스적인 인물임을 보여준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문화생산자들이었으며,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행해지는 문화예술 활동의 충실한 기록자들이기도 했다. 임 교수가 펴낸 『한문서사의 영토』와 『이조한문단편집』에는 15세기부터 쓰인 한문 단편들이 번역돼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실사와 허구 사이에 있는 조선 스토리’들에서 우리는 다양한 예술인을 만나게 된다. 거문고 연주자 이마지(李馬智), 비파 연주자 송경운, 악공 김성기, 겸재 정선, 시조창으로 유명한 이세춘 등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 중에는 『발해고』로 유명한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쓴 당대 최고의 해금 명수 유우춘에 대한 글도 있다. 유득공 본인이 해금을 배우려고 용호영(서울에 있는 군부대의 악대) 소속의 악사였던 유우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유우춘은 “기예가 더욱 나아갈수록 사람들이 알아주지를 못한다”며 예술가적 고통을 토로한다. 임 교수는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우춘의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이 시대의 새로운 현상으로 전문 예능인의 출현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예능인이 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군역이나 부역과 같은 일종의 역(役)이었다. 특히 음악 담당은 고역(苦役)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대부분 각종 의례와 연회 같은 국가적 음악 수요를 위해 국가가 관리하던 천민 신분이었다.

유우춘의 예술가적 고뇌는 자기 예술을 이해하고 소비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마련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18세기에는 세악, 즉 줄풍류 같은 도시적 음악이 등장했다. 최남선은 후에 『조선상식문답 풍속편』에서 “줄풍류란 거문고ㆍ가얏고ㆍ양금ㆍ해금 등 현악기를 주체로 하고 거기 장구ㆍ젓대ㆍ 단소를 반주격으로 얹어서 조용히 엔조이하는 실내악”이라고 엣지있게 규정한다. 줄풍류뿐 아니라 여러 예능 전문인이 과거 급제, 수령의 부임 잔치 등 크고 작은 연회에 불려다니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이들을 후원하는 페이트런(patron)이 등장하기도 했다. 유우춘의 예술가적인 고뇌는 이러한 문화가 18세기 조선에 생성됐다는 방증이다.

대중적 취향과 예술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우춘에 대해 지식인 유득공은 크게 공감한다. 천첩의 소생으로 미천한 악사 유우춘과 실학자 유득공 사이에 ‘예술’을 매개로 신분을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일류 지식인들이 예술에 대한 취향을 함께 나누면서 교류”하는 분위기는 예술가에 대한 존중과 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왕족 출신으로 알려진 남원공자라는 인물은 천민 출신인 금사(琴師) 김성기를 스승으로 여기고 그의 악보를 정리했다. 이는 당대 지식인들의 개방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하층에서 올라오는 역동적인 에너지에 제대로 감응하고 있었다.

또 지식인들은 기꺼이 다양한 장소에서 행해진 연희 문화의 상세한 기록자가 됐다. 그들이 남긴 연희시가 덕분에 일제 강점기 등 굴곡의 역사를 겪으면서 단절돼 전승되지 않는 풍요로웠던 연희 문화의 면모를 추측이나마 해볼 수 있다. 연희를 묘사한 글들을 분석하면서 윤 교수는 “각계각층에서 행해진 연희문화에는 일-놀이-바람(wish)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놀이문화의 결정판은 경복궁 중건 연희다. 무리한 증축이라는 일각의 비난과 화재사고 등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흥선 대원군은 국가의 위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경복궁 증축을 결정한다. 경복궁 건축이라는 대역사를 계기로 전국에서 사람과 물건이 서울로 집결했다. 강원도 지역의 노래인 아리랑이 서울로 전해졌고, 여기서 다시 각 지역으로 흘러들어가 전국적인 노래가 되었다. 아리랑은 일제시대에는 전 민족의 노래가 되었고, 이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는 세계적인 콘텐트로 인정받는다.

‘벽동의 병든 늙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경복궁 증축 과정의 연희와 관련해 시가를 남겼다. 증축이 완료된 후에만 연희가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증축 과정 동안 일이 끝난 저녁에는 흥겨운 놀이판이 벌어지곤 했다. 기록은 일이 잘 되길 바라는 송축의 말로 시작되어 왈자들의 가작놀이ㆍ탈춤놀이ㆍ사냥놀이ㆍ팔선녀놀이ㆍ금강산놀이ㆍ서유기놀이, 신선놀이ㆍ선등놀이ㆍ기생놀이 등 이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모든 놀이가 다양하게 이어지다가 100명의 아이가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그려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백자도(百子圖) 놀이로 끝난다. 일터는 놀이와 문화가 만들어지고 공동체의 염원이 집결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리의 놀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가 온 게 아닌가?”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윤주필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했다.

문화는 향유하는 자들의 것이다. 문화는 그 시대의 생산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왕성한 문화적 활동은 시대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잘 노는 사람들이 좋은 시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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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