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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가 야구 하는 영화 미치지 않으면 만들 수 있겠나



2003년 데뷔 이후 김용화(42) 감독의 이력서에서 ‘좌절’이란 단어를 찾아보긴 힘들다. 데뷔작부터 3편을 만드는 동안 한 번도 상업적으로 실패한 적이 없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선 보기 드물게 평단의 지지도 든든했다. 웃음과 눈물의 배합 작업에서 최적점을 절묘하게 찾아내는 재능은 그를 휴먼 코미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끌어올렸다.

데뷔작 ‘오! 브라더스’는 314만 명, 두 번째 영화 ‘미녀는 괴로워’(2006)는 662만 명, 세 번째 영화 ‘국가대표’(2009)는 84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비인기종목인 스키점프 선수들의 분투기를 그린 ‘국가대표’는 그 해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쓸었다. 명성만큼 돈도 벌었다. ‘국가대표’ 흥행 후 스스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표현했을 만큼 상당한 액수의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

보통 사람 같으면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이젠 좀 느긋하게 살자 할 텐데 그는 다시 고생을 자청했다. 난데없이 3D 영화 ‘미스터 고’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3D만 해도 어려운데 이 영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고릴라가 주인공이란다. 그것도 동물원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285㎏ 거구에 인간의 20배나 되는 힘으로 홈런을 날리는 괴력의 야구선수다. 실존하지 않는 캐릭터를 100% 디지털로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 이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 그는 ‘국가대표’로 번 돈을 모두 털어 시각효과(VFX) 스튜디오인 덱스터 디지털을 차렸다.

기술 인력 150여 명을 포함, 직원 180여 명을 두는데 1년 경상비만 80억원이 든다. 순제작비는 한국 영화 평균의 10배에 가까운 225억원. 마케팅비 등을 포함하면 300억원대에 육박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시쳇말로 ‘잘 되면 대박, 안 되면 쪽박’이란 표현이 딱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연출 제안이 줄을 선 스타 감독이 지난 3년여 동안 이런 ‘미친 짓’에 몰두한 이유는 무엇일까. 7월 개봉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그를 2일 경기도 파주 사무실에서 중앙SUNDAY가 만났다.

김용화 감독은 ‘국가대표’가 끝난 후 1년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를 붙들었던 감정의 정체는 포만감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허망함이었다. “이렇게 많은 트로피가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남들을 들볶아서 이루려고 발버둥쳤던 게 고작 이거였나 싶으니 허무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돈과 명예, 행복은 어느 선을 넘으면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그때 깨닫게 됐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이젠 내 개인의 부와 명예를 얻는 데 매달릴 게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 동료 스태프, 나를 보고 감독의 꿈을 키우는 영화 지망생, 내 삶의 터전인 한국 영화시장에 의미가 있을 만한 일을 해야겠다”고.

때마침 전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한 ‘아바타’도 그의 피를 다시 끓게 했다. “‘아바타’를 보기 전까지 난 ‘입체 거부론자’였다. 3D 입체는 카메라 렌즈가 이미 해결했으니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바타’를 보곤 경악했다.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전혀 새로운 문화 체험이었다. 이미 대감독의 반열에 오른 제임스 캐머런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모험을 했다는 사실도 그저 놀라웠다.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혁신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1 원작 만화인 허영만 화백의 ‘제7구단’은 청소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됐다. 1985년 7월호 표지에 등장한 미스터 고.

그럴 때 만난 것이 ‘미스터 고’였다. 국내 양대 영화 투자배급사 중 하나인 쇼박스는 ‘미스터 고’로 중국 등 해외투자를 끌어들여 글로벌 시장을 두드려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 영화시장이 내수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던 그에게도 더없는 도전의 기회였다.

그 전에 3D 영화로 ‘7광구’(2011)가 있긴 했지만, 그린 스크린에서 배우들의 동작을 찍은 뒤 CG를 이용해 3D로 구현한 배경과 괴물을 합성하거나, 2D로 찍은 실사를 3D로 변환(컨버팅)하는 방식이었다. ‘미스터 고’는 실사를 3D 카메라로 촬영했고 3D 디지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 등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국내 첫 3D 영화다. 한국 영화로선 이례적으로 중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그룹 화이브러더스로부터 50억원 넘게 투자를 받았고 중국 개봉도 파격적인 조건으로 성사됐다.

‘미스터 고’는 ‘식객’ ‘타짜’ 등으로 잘 알려진 허영만 화백이 1985년 청소년 만화잡지『보물섬』에 연재한 ‘제 7구단’이 원작이다. 만년 꼴찌 구단 ‘샥스’를 1위로 끌어올리는 등번호 99번 고릴라 타자 미스터 고가 주인공이다. ‘야구하는 고릴라’라는 핵심 컨셉트를 가져와 인간과 동물의 우정과 교감을 그린다. 중국 서커스단 출신 소녀 웨이웨이(중국배우 서교 )가 고릴라 링링을 한국에 데려와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수퍼스타로 만든다는 얘기다. ‘국가대표’ ‘미녀는 괴로워’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성동일이 고릴라를 프로야구 선수로 만드는 초유의 일을 벌이는 유명 에이전트로 출연한다.

2 미스터 고를 만드는 과정. ① 애니메이션 : 디지털 캐릭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업. 고릴라의 표정과 동작 등 ‘연기’가 여기서 이뤄진다. 애니메이션이 완료되면 털을 심는 게 다음 단계다. ② 라이팅 : 완성된 3D 캐릭터를 실제 인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가상의 조명을 입히는 작업. ③ 크리처 파이널라이즈 : 모든 작업이 끝난 크리처(생명체)의 완성 단계. ④ 완성 : 여기에 배경을 넣어 같은 공간에 인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만든다.


100% CG 고릴라+입체 영화의 조화가 관건

영화의 성패는 100% 디지털로 탄생한 고릴라 캐릭터가 얼마나 배우처럼 감정 표현을 잘할지, 실사에 어색함 없이 잘 녹아들지에 달려 있다. 처음부터 한계는 명백했다. 비용과 기술력이었다. ‘킹콩’(고릴라)이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침팬지) 등 비슷한 종류의 동물 캐릭터가 주인공인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이 1000여 컷에 달한 경우는 없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시각효과 회사인 ILM,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에 ‘견적’을 문의한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이 정도로 하려면 최소 600억원에서 1000억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 대답에 너무 실망스러워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킹콩’의 피터 잭슨 감독이 웨타 스튜디오 수천 명 인력을 데리고 수백억원의 비용을 들여 한 일을 우리가 10분의 1 예산과 인력으로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는 비관하지 않았다. 대신 일단 일을 저지르는 쪽을 택했다. 기술 인력들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VFX 전문가인 정성진 전 EON 대표가 수퍼바이저로 합류했다. 3D 카메라 등 최신 장비를 사들였고, 숱한 밤샘 작업과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 나갔다. 촬영부터 후반작업까지 전 과정이 가능한 3D 제작 시스템도 국내 최초로 구축했다. ‘미스터 고’가 아니더라도 향후 3D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바타’의 3D를 총괄했던 척 코미스키, 동물 크리처(생명체) 분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시각효과 회사 리듬 앤 휴즈 소속 김태용 박사 등에게 3D 자문도 구했다. “리듬 앤 휴즈가 시각효과를 맡았던 3D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나오는 장면은 150여 컷이다. 그중 10%는 진짜 호랑이가 출연한 거라고 하더라. 우리와는 작업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 제작진이 고릴라를 접할 수 있었던 건 일본 도쿄 우에노 동물원에 2박3일 출장을 가 관찰한 게 전부다. 나머지는 동영상을 보며 참고했다.”

동물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까다로운 부분은 털이다. ‘미스터 고’ 제작진이 고릴라 털을 만드는 렌더링 프로그램을 개발한 건 수확이었다. “털 제작 프로그램은 ILM이나 픽사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 몇 군데만 보유하고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들이 내준다고 그들의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도 없다. 내가 만들려 하는 콘텐트에 맞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기술력의 핵심이다. 고릴라의 표정, 동작을 감독의 의도대로 애니메이터들이 얼마나 표현해 낼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웃거나 찡그리거나 속상해하는 링링의 생생한 표정, 야구복 위로 출렁이는 엉덩이의 양감 등은 모두 이렇게 탄생했다. “비용 등 환경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데도 이 정도 품질의 영화를 내놓을 수 있었던 건 한국 인력의 우수함으로밖엔 설명이 안 된다. 3년여 동안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온 스태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못해서 안 한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한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게 우리가 거둔 가장 큰 성취다.”

3 모션 캡처를 하는 광경. 미스터 고 역을 맡은 배우 몸에 센서를 붙여 감지한 동작을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이다. 4‘미스터 고’에서 고릴라 링링과 우정을 나누는 소녀 웨이웨이. 중국 배우 서교가 연기했다. 오른쪽은 링링을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시키는 수완 좋은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5 촬영한 내용을 3D 안경을 쓰고 보는 김용화 감독.


“진짜 고통을 맛본 자는 고통을 과시하지 않는다”
테크놀로지가 상상력을 구현하는 도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의 정서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다면 테크놀로지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미스터 고’가 보여주려고 하는 ‘말을 알아듣는 고릴라와 인간의 우정’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지는지도 모른다.
김용화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이 사회 마이너리티들의 가슴 짠한 사연을 보여줬다. 비만으로 차별받다 전신성형을 감행하는 여성 가수(‘미녀는 괴로워’), 약물중독으로 선수생활을 끝낸 후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전전하는 입양아 스키점프 선수(‘국가대표’) 등의 변신과 재기를 통해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꿈을 꾸는 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슬픔을 웃음으로 감싸 안는 역설의 문법이었다.

“진짜로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이 과시하듯 그 고통을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데서 출발했다. ” 고통을 고통스럽게 다루지 않는 것. 그럼으로써 희망을 얘기하는 그의 장기는 보통사람들처럼 살 수 없었던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과 후, 그의 삶은 ‘비교체험 극과 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가 다른 형제가 주인공인 데뷔작 ‘오! 브라더스’는 조로증 환자라는 설정만 빼면 감독 자신의 가족사다. 강원도 춘천에서 자란 그는 철 들기 전부터 가난과 친숙했다. 20년 가까이 투병했던 부모를 건사해야 하는 책임이 일찍부터 주어졌다. 낮엔 시장에서 생선을 팔거나 채석장·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밤엔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에서 먹고 자며 간호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 부모는 1년을 사이에 두고 차례로 세상을 떴다. 남은 건 병원비 등으로 진 빚 3000만원이었다. 휴학을 밥 먹듯 하느라 10년 만에 졸업한 대학 졸업작품도 제작비가 모자라 고향 동문회의 모금으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든 단편 ‘자반고등어’는 휴스턴 영화제 동상, 로체스터 영화제 대상 등을 받으며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재능이 아니라 여건이란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한때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충무로를 대표하는 스타 감독이 되기까지 그의 지난 세월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하지만 “밑바닥이 어딘지를 영화하기 전부터 알았던” 덕분일까. 대형 프로젝트의 공개를 앞둔 그의 표정에선 초조와 불안보다는 ‘빨리 보여주고 싶다’는 기분 좋은 조바심이 더 많이 비쳤다. “최선을 다해서인지 두려울 게 별로 없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 안 미쳤으면 이런 일, 못했을 거다.” 세상은 그처럼 무언가에 심하게 미친 사람들 덕분에 즐거운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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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