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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짓돈 털어 음악회 오는 ‘진짜’ 관객의 나라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88)는 수많은 러시아 지휘자 중에서도 첫손에 꼽힌다. 알렉산드로비치 루소프가 그린 므라빈스키. 뒤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보인다. [위키피디아]
황현의 매천야록은 1900년대 초반 긴장감이 고조되던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수난을 겪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을 적고 있다. “이때 조야에서는 모두 ‘왜놈은 그래도 사람이지만 아라사 놈들은 짐승일 뿐이다’ (중략) 하면서 왜가 이기고 아라사가 지기를 빌었다.” 시대가 눈앞에 그려지는 문장이지만 나에게는 다른 기억을 부른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97년 처음 러시아 땅을 밟던 그때, 당시 옆을 스쳐 지나가던 러시아 사람들은 그야말로 ‘괴물’ 같았다. 내 어깨를 훌쩍 넘을 듯한 다리 길이에 험상궂은 얼굴과 표정 없는 몸짓, 조용하지만 공격적인 언어는 자못 무서웠다. 풍경 또한 어딘지 모르게 공포스러웠다.

사방팔방으로 굽이친 산세에 익숙한 강원도 꼬마에게 끝도 없이 펼쳐진 평야, 그 무한성은 왠지 잔혹해 보였다. 자동차를 타면 핸들을 단 한 번도 옆으로 꺾지 않고 수십 분을 가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풍경에 기가 질렸다. 게다가 낙후된 환경…. 당시 사흘간만 나를 만나러 한국에서 날아온 엄마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엄마가 자란 60년대의 대한민국 같다고 했다. 불편한 생활, 좋지 않은 치안, 비위생적인 거리….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건물 지하에 내려가 철 창살이 쳐진 창문을 통해 벽돌처럼 딱딱한 빵을 사면서 여기가 당최 사람 살 곳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때로부터 20년이 조금 못 된 지금, 피아니스트로서의 내가 점점 이곳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과 머릿속에 마치 작은 생채기처럼 남은 그곳을 다시 찾은 건 14년이 흐른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때였다. 20세기 러시아 음악의 산실인 차이콥스키 콘서바토리, 그 심장 볼쇼이잘(대극장). 쇼스타코비치부터 호로비츠까지 수십 명의 대가들의 전설적 영상의 배경이었던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100년여 동안 축적된 그 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연주를 끝내고, 또 다음 연주를 끝내고 나올 때마다 계속 지나오던 길이 점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길거리에 클래식 음악회의 포스터가 마치 대기업의 광고물이나 팝스타의 콘서트만큼이나 크게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서유럽이나 미국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이었다. 독일이나 미국에서 음악회가 격식과 예우를 갖추는 문화생활이라면 러시아에서는 그저 생활이다.

변변한 슈트 한 벌 없는 노신사도, 헤비메탈이나 들을 법한 과격한 옷차림의 젊은이도 아무 거리낌 없이 찾는 곳이 음악회장이다. ‘문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 것 같다고 여겨지는 빈민층도 러시아 음악계에서는 VIP 고객이다. 실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필하모니홀 근처에는 갈 만한 식당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밥 먹을 돈으로 음악회 표를 사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의 관객들은, ‘진짜’다. 쌈짓돈을 모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러 온 그들은 감동을 받으면 악장 중간이든 언제든 박수를 아끼지 않고,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 연주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꽃 한 송이를 건넨다. 만날 수 있는 가장 비(非)현학적인 청중이다.

그런 청중의 사랑을 받는 러시아의 오케스트라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수준급이다. 모스크바만 해도 모스크바 필하모닉, 스베틀라노프 심포니, 러시아 국립 교향악단,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비르투오지, 러시안 스테이트 필하모닉, 모스크바 스테이트 심포니,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등 그 면면만 보아도 입이 쩍 벌어지는 단체가 몇 개나 된다. 물론 땅덩어리 크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문화도시인 뉴욕·런던·도쿄 등에 비교해도 월등한 숫자다. 지휘자인 유리 시모노프,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미하일 플레트네프,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 발레리 폴리얀스키, 파벨 코간, 유리 바슈멧 등은 모두 세계 1급의 지휘자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필하모니,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의 아카데믹 심포니, 그리고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가 버티고 있다. 아직까지도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해 그 단결력과 응집력이 서유럽과는 기본부터 다른 것이 러시아 오케스트라다. 대여섯 살의 나이부터 영하의 날씨에서 나쁜 악기와 씨름하며 지독하게 다져온 기초는 러시아 출신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할 때 빛을 발한다. 특히 금관 악기군은 아무도 러시아 악단을 따라오지 못한다.

이런 압도적인 소프트웨어에도 불구하고 고국을 떠나 외국으로 공부하러 건너 온 러시아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은 귀환을 꺼린다. 현실의 벽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남부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친한 러시아 출신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약 15년 전 차이콥스키 콘서바토리 피아노 강사로서 받던 봉급이 한 달에 2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사교육비가 말도 안 되게 싸서 재능만 있으면 아무리 돈이 없더라도 쉽게 영재로 길러질 수 있는 사회의 시스템은 불과 몇십 년이 흐르면 수혜자들을 도로 겨냥한다. 이름 하나로 1000여 명의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스타급 연주자가 아니면 연주료 역시 적게는 수십만원을 밑돈다고 한다. 수많은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향한 열정은 절대로 식을 줄 모르는 그곳, 러시아. 음악가에게는 신비의 땅이 아닐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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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