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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볼일’ 보는 세상 만드는 ‘Mr. 화장실’

잭 심 ‘세계화장실기구(WTO)’ 창립자는 똥 얘기를 꺼리지 않는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획을 통해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화장실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변기는 인터뷰 시 그가 가장 애용하는 소도구다. [사진 세계화장실기구]
몇 달 뒤면 결혼 20주년이다. 딱히 화려한 출발은 아니었다. 경기도 공단지역의 한 서민아파트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신혼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뭔가 윤택해진 느낌이었다. 작고, 낡고, 하나뿐인 화장실 덕분이었다.

나는 재래식(푸세식) 변소에 익숙한 세대다. 문제는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다 거쳐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된 뒤에도 그 혜택을 별로 못 봤다는 거다. 결혼 전 마지막 주거지 화장실도 푸세식이었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고역이었다. 그러니 볼일 볼 때마다 신발 꿰찰 일 없고 냄새 안 나는 아파트 화장실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밤이면 시어른들 눈치 보여 물 한 번 시원하게 못 내렸지만 말이다. 화장실 두 개짜리 집에 사는 지금은, 어찌 보면 꽤 호화로운 삶이다.

그래서 “배변 환경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이 사람, 일명 ‘미스터 화장실(Mr. Toilet)’의 외침이 내겐 조금도 우습지 않다. 그는 더 나아가 “화장실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일갈한다. 세계 인구의 37%인 25억 명이 제대로 된 화장실 없이 산다. 매해 200만 명이 배설물을 통한 전염병과 물 오염으로 인해 죽어간다. 잭 심(56·Jack Sim), 그가 ‘세계화장실기구(WTO, World Toilet Organization)’를 설립한 연유다. 이 작고 열정적이며 유머러스한 싱가포르 태생 남자를 200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세계 ‘환경 영웅’으로 선정했다. 2011년에는 잡지 ‘리더스다이제스트’가 뽑은 ‘올해의 아시아인’이 됐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주요 후원자다. 이런 그도 화장실로 세계를 바꾸리라 결심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개심(改心)은 마흔 살에 찾아왔다.

“배변 환경이 삶의 질 결정한다”
1997년 잭 심은 싱가포르의 건설업자이자 부동산업자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돈도 꽤 벌었고 업계에서 신망도 두터웠다. 하지만 그에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대로 살아도 좋은 걸까, 더 큰 부를 쌓기 위해 언제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할까.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인생 80년’의 절반을 산 셈인데 뭔가 허전했다. 사회적 기업 지원기구인 ‘스콜재단’의 인터뷰에서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삶은 유한합니다. 80세를 넘기기 쉽지 않죠. 꽉 찬 인생을 원한다면 오로지 돈 버는 데만 집중해선 안 됩니다. 뭔가 더 큰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그 시간을 써야지요.”

이런 생각에 따라 그는 남은 삶 동안 사회에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마침 당시 싱가포르에서는 화장실 위생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거다!’ 싶었다. 2008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먹는지는 알아도 얼마나 자주 화장실에 가는지는 모른다. 이건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한데도 화장실을 둘러싼 오명(stigma)이 공개적 논의를 어렵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그가 ‘먹고 싸는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단박에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성장 과정의 영향이 컸다.

잭 심은 싱가포르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화장실도 변변찮았다. 가게 점원인 아버지의 수입만으로는 입에 풀칠조차 어려웠다. 어머니가 팔을 걷고 나섰다. 자수 수업에 등록한 뒤 매일 배운 것을 동네 여성들에게 가르쳤다. 수업료로 1달러씩을 받았다. 이어 시내 백화점의 화장품 코너를 찾아 무료 메이크업 모델 노릇을 했다. 곁눈질로 기술을 배워 메이크업 클래스를 열고, 신부 화장 및 예복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사업도 일으켰다. 잭 심은 어머니를 보며 창의적인 사람은 가난뱅이가 될 리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학창시절엔 주의가 산만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사업에서만큼은 승승장구했다. 성공 비결은 각종 파트너들과 튼실한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었다. 이렇듯 관계지향적이며 협업을 중시하는 스타일은 이후 WTO를 결성하고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에 큰 힘이 됐다.

유니세프·세계은행 등과 파트너십
화장실에 관심을 갖게 되자 그는 즉시 싱가포르에 협업할 단체가 있는지부터 찾았다. 물론 없었고, 그래서 98년 직접 ‘싱가포르화장실연합’을 결성했다. 9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태지역 위생 심포지엄에 참가해서는 국제 규모의 화장실 기구 결성을 주창했다. 2001년 마침내 WTO가 출범했다. 매년 11월 19일을 ‘세계 화장실의 날’로 정했다. 2005년에는 ‘세계화장실대학’을 설립했다. 현재 WTO는 세계 58개국 235개 단체가 가입한 초대형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잭 심은 화장실 문제를 시장과 마케팅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한다. 사람은 하루 평균 6회 화장실에 간다. 그럼에도 그토록 많은 가정에 화장실이 없다는 건 대단한 비즈니스 기회다. 따라서 적절한 기술과 방법론만 있다면 화장실 확충은 그 자체로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WTO는 가구당 30~40달러 이하로 화장실을 설치하는 법을 고안하고, 이를 각지에 효과적으로 퍼뜨리기 위한 프랜차이즈 사업모델까지 구축했다.

잭 심은 또한 “화장실도 섹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후원사 중 하나인 알리안츠와의 인터뷰에서 “빈곤층은 왜 화장실보다 TV나 휴대전화에 돈을 쓸까. 그 편이 더 근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화장실에 감성적 가치를 더하고 그 소유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욕망을 가진 소비자일 뿐’이라는 통찰이다.

이런 인식 전환과 더불어 그는 각국 정부·기업들의 관심과 기부를 끌어내기 위해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고, 때로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몸에 칭칭 감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이를 통해 유니세프부터 세계은행·록펠러재단·유니레버까지 광범위한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물 소비를 최소화하고 배설물의 자연분해를 촉진하는 기술 또한 적극 개발한다.

그는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에 관계없이 꿈꾸고, 이로써 세상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기업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선 필요한 때 꼭 알맞은 파트너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개방, 소통, 네트워크. ‘21세기 비즈니스 불변의 법칙’은 화장실 문제 해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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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