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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칼럼] 국격과 국익 사이

지난 주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윤창중 사태’를 보면서 느닷없이 ‘관심의 불균형’이란 주제가 떠올랐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를 향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소리는 정상회담 못지않게 요란했다. 국격 훼손 사건인 만큼 당연하다. 그러나 국격만큼 중요한 다른 국가적 사안에는 어떤가.

 지난달 공군의 열악한 전투기 부품 실태를 취재할 때가 생각난다. 미국으로 유출되는 23조원을 줄이려면 부품 일부라도 국산화해야 한다는 공군 일각의 목소리에 공감해 취재를 시작했는데 감정이 복잡했다. 공군의 전투기 정비 담당들이 ‘부품이 길게는 3년씩 공급되지 않는다’고 할 때는 속이 쓰리기까지 했다. 아니, 무슨 이런 군이 있나. 화도 났다. 부품이 없다면 비행기는 반쪽이거나 주저앉을 텐데…. 알아보니 역시 그랬다. 기가 막혔다.

 그런 전투력 저하 현상을 기사화하려 하자 공군 측은 “그런 내용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공군 관계자는 ‘달을 가리키면 손만 보는’ 현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열악한 현실을 고발해도 전투력 관련 내용을 쓰면 취지가 왜곡되고 대책 논의보다 ‘공군은 뭐했느냐’는 비난만 거세져 마녀사냥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사실 부품 사태 원인을 공군에만 돌릴 수도 없다. 미국의 기술독점, 한·미 동맹같이 공군 차원을 넘는 한계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럽으로 구매처를 바꿀 수도 없다. 그런 저런 것들을 고려해 기자는 공군 요청을 받아들여 문제를 일부만 드러내는 데 그쳤다. 그래도 이런 기사가 후속 대책을 세우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기대를 했지만 아직 그런 기색은 없다. 왜 이런 문제에 사회는 냉담할까.

 다른 사례도 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소듐냉각고속로 사업도 그렇다. 이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면 최소한 수조원이 든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관련 부처의 움직임을 보면 서서히 그쪽으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그 방향이 잘못됐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세상은 파이로를 의심하고, 주요 선진국이 조(兆) 단위의 돈을 써가며 실험용 소듐냉각고속로를 만들었지만 냉각제로 쓰이는 소듐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켜 거의 문을 닫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의욕만으로 과학기술 차원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한쪽에선 후손에게 초대형 재앙을 안길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메아리가 없다. 대형 원자로 프로젝트를 겨냥해 학계와 업계가 담합을 한다는 ‘원전 마피아설’만 횡행할 뿐이다.

 성추행 의혹에 금세 달아오르는 우리 사회가 왜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국부가 유출될 국가적 현안들엔 꿈쩍하지 않을까.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라서 그렇다고들 하지만 실제 답은 뻔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성추행 사건처럼 권력·돈·섹스라는 스캔들 요소를 갖춘 흥미진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재미와 의미 사이의 싸움에서 의미가 이길 승률은 0%에 가깝다.

 그러나 성추행 의혹이나 연예인 스캔들을 캐묻는 열정의 일부라도 전투기 부품이나 원자력협정 같은 무거운 정책 이슈에도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대중적 쏠림을 탓할 수만은 없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듯 늘 진지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 사회가 재미없는 것들에 이렇게 계속 냉담할 경우 ‘정책 시장’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재미·흥미에 눈이 쏠린 사이에 뭔가가 곪아 터지고, 뒤늦게 네 탓을 하거나 마녀사냥을 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국가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어이없는 타령이지만 윤창중 스캔들로 쏠리는 관심의 1%일망정 재미는 없지만 의미 있는 정책 이슈로 향했으면 좋겠다. 국익을 위해서나 국격을 위해서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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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