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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전태일 열사는 외로웠지만

어느 나라든 최고 부자는 비슷하게 산다. 명품을 걸치고 자가용 비행기를 타며 최고급 와인을 마신다. 미국의 부자도, 아프리카 최빈국의 부자도 대개 그렇다. 그래서 나라의 경제 수준을 가늠하려면 가장 가난한 이들을 봐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 밥을 굶는지, 가장 가난한 사람이 학교는 다니는지, 가장 가난한 사람이 기본적인 예방 접종을 받는지를 말이다.

 근로 여건도 마찬가지다. 가장 불리한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보면 그 나라의 국격이 드러난다. 최근 옷 공장이 무너진 방글라데시. 이 나라에서도 가장 좋은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쾌적한 사무실에서 법정 휴일과 사회보험을 보장받으며 일할 것이다. 하지만 사바르 지역 옷 공장인 라나 플라자의 근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3000여 명의 재봉사가 벽에 금이 간 건물에서 빽빽이 앉아 일했다. 균열이 발견된 지 닷새가 지나도 공장은 문을 닫지 않았다. 결국 공장이 무너졌고 1000여 명이 숨졌다. 같은 공단에선 2006년에도 옷 공장에 불이 나 100여 명이 죽었다.

 한국의 근로 여건은 확실히 방글라데시보다는 낫다.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지 43년이 지났다. 닭장 같던 청계천 옷 공장은 사라졌다. 더 이상 10대 소녀들이 폐병을 앓으며 재봉틀을 돌리지 않는다. 화장실을 참아가며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이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드웨어로만 보면 근로 여건이 많이 성숙한 셈이다.

 하지만 근로 환경의 소프트웨어는 아직 멀었다. 노동 시간과 작업장 환경은 개선됐지만 모든 근로자가 인간으로 존중받지는 못하는 것이다. 라면을 제대로 끓이지 않았다고 잡지로 얼굴을 맞은 여승무원, 요구하는 대로 물량을 주문하지 않는다고 쌍욕을 들은 우유 대리점주, 최저임금을 받는 일터에서 삶의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아르바이트 젊은이들….

 나라가 가난을 구제하려면 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나라의 곳간을 헐어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밥과 교육과 백신을 제공하자는 동의 말이다. 나라의 근로 여건이 성숙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이런 취급을 받으며 일할 수 없다”는 을과 “아무리 을이라지만 인간적으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갑, 을의 인격이 지나치게 침해당하지는 않는지를 감시하는 당국이 한마음이 돼야 한다. 청년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더 이상 근로자를 착취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사건이 하나 터질 때마다 온 나라가 들끓는 건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불리한 위치에서 일하는 소위 ‘을’의 노동자라도 모욕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없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거다. 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국 ‘을’의 근로 여건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이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43년 전 분신했다. SNS와 인터넷이 있어 지금의 ‘을’들은 덜 외로워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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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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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