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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카리스마로 정상 군림한 ‘친절한 독재자’

중앙포토
‘축구 명장’ 알렉스 퍼거슨(72·맨체스터 유나이티드·사진) 감독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발표하면서 그의 리더십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퍼거슨은 1986년부터 올 시즌까지 27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면서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5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일궈내며 명장의 반열에 올라 있다. 99년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챔피언스리그를 석권하면서 트레블(3관왕)을 달성한 뒤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고별전 입장권 500만원대로 치솟아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미 확정한 맨유는 13일 스완지시티와의 홈경기, 20일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원정 등 두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최종전 입장권 가격이 3000파운드(약 510만원)까지 올라갔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퍼거슨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86년 퍼거슨이 처음 부임했을 때 맨유는 술 마시고 뛰는 선수가 즐비할 정도로 ‘술주정뱅이 구단’이라는 오명을 들었다. 성적도 중하위권이었다. 이런 구단을 퍼거슨은 27년간 지휘하면서 세계 최고 명문으로 키웠다. 퍼거슨의 마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열정, 카리스마, 경쟁심 유발, 팀워크, 안목, 희생-.

승리를 부르는 그의 키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노회할 정도로 선수들의 심리를 꿰뚫는 영리함과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다음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 측근들에게 전한 내용이다. “맨유에는 ‘로테이션 방식’이란 게 있다. 주전과 비주전 구분 없이 두루두루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런데 퍼거슨 감독은 내 기분을 몰라줄 때가 있다. 몸 상태가 날아갈 정도로 좋은데 벤치를 지킬 때는 약이 오르고 좀이 쑤신다. 감독이 야속해진다. 그러던 2007년 3월 볼턴과의 홈경기. 내게 선발 출전 기회가 주어졌다. 잘해내겠다는 각오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그날 나는 두 골을 뽑았다. 첫 번째 기회를 날리지 않았다면 해트트릭도 가능했다. 경기 후 빙그레 웃어주는 감독과 마주했다. 만일 감독이 내 심리까지 읽고 기용했다면 그는 천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든 작든 어느 조직에서나 경쟁은 필수적이다. 적절한 경쟁체제는 구성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막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런 점에서 퍼거슨의 로테이션 전략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겠지만 최대 효과를 낸 것이 분명하다.

로테이션 체제에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모든 선수가 자기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맨유에서는 어느 누구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박지성은 “스스로 준비를 마쳤다고 해서 세상이 기회의 문(출전 기회)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 때 기여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경쟁이 적당한 선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감독이 의도한 대로 선의의 경쟁만 이뤄질 수는 없는 일. 특히 팬들의 인기가 높고 팀 내 위치가 확고한 고참들의 경우 감독의 의도대로만 움직여 주지는 않는다.

라이언 긱스는 이탈리아 유벤투스전에서 전반이 끝나고 퍼거슨 감독이 자신을 교체하자 화가 치민 나머지 라커 룸에서 음료수 병을 걷어찼다. 공교롭게도 음료수병은 감독에게 날아가 그의 바지와 신발을 적셨다. 다른 때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감독이지만 이날 퍼거슨은 그 음료수 병을 다시 주워 긱스에게 건네주며 어깨를 어루만져 줬다고 한다. 긱스가 감독에게 미안해했을 장면은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 부하를 적절하게 밀어붙이면서도 또한 컨트롤해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모습이다. 때로는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와 존경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퍼거슨 감독에게는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선수들 면전에서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벼락같이 화를 잘 내서 붙여진 별명이다. 우리나라 감독 중에서 화를 잘 내 ‘X핏대’란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퍼거슨의 별명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핏대 퍼거슨’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퍼거슨은 스타 선수라도 팀워크를 해친다고 판단이 되면 참지 못한다. “팀보다 중요한 선수는 없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2003년 일화 한 토막. 아스널과의 FA컵 하프타임 때다. 국민적 사랑을 받는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스타 중의 스타 선수가 감독의 용병술에 이의를 제기했다. 퍼거슨은 라커 룸 바닥에 있던 축구화를 걷어차 베컴의 눈가가 찢어졌다. 결국 베컴은 그해 6월 맨유를 떠나야 했다. 이처럼 리더십에 반기를 들거나 동료를 비방한 선수에게는 관용이 없었다. 맨유의 전설로 남은 야프 스탐은 퍼거슨 감독의 선수 영입을 비판하다 보따리를 쌌고, 로이 킨은 TV 인터뷰에서 동료를 비난했다가 방출됐다.

궁지에 몰린 선수에겐 든든한 방패
하지만 퍼거슨은 선수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었다. 베컴이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숙적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실축을 해서 살해 위협을 받았을 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교묘하게 웨인 루니(잉글랜드)를 퇴장시킨 뒤 윙크 세리머니로 잉글랜드 축구팬의 공분을 샀을 때도 그는 두 선수의 방패막이가 돼 주었다.

퍼거슨에 대해 호날두는 “나에게 계속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라고 말했고, 영국 언론은 그를 “친절한 독재자”라고 표현한다.

박지성은 “가끔 은퇴 후를 설계하며 ‘내가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팀을 이끌까’ 하고 고민한다”고 했다. “어떤 전술을 쓰고, 팀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고, 선수들과는 무엇을 얘기하고…. 하지만 퍼거슨 감독에게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퍼거슨이 큰 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신동재 기자 dj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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