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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때서?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서울 서촌(종로구 누하동)에 가끔 들르는 식당이 있다. 토마토 국수가 특히 맛있고, 다른 술안주 요리도 괜찮은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식당의 컨셉트가 중국 문화대혁명(1966~76년)이라는 점이다. 실내에 마오쩌둥 흉상, 홍위병 복장·인형, 당시 사진, 마오쩌둥 어록 등이 가득 진열돼 있다. 벽에는 ‘조반유리(造反有理)’ 같은 문화혁명 당시 구호들이 부착돼 있다. 사립박물관 운영자이기도 한 식당 주인이 오래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수집한 물건들이라 한다.



 이 수상한(?) 식당이 1년 반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일부 오해도 받았다. 지나가던 노인이 온통 붉은색으로 치장된 실내 풍경과 마오쩌둥 흉상을 보고 “왜 김일성 동상을 가져다 놓았느냐”고 따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엔 한국인 외에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도 소문이 퍼져 심심치 않게 발길이 이어진다. 이미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는 관광여행이 자리 잡았고, 관련 기념품 시장도 형성돼 있다.



 중국인들이 바보라서 ‘10년 동란(動亂)’으로 불리는 문화혁명의 비극을 되살리는 것일까. 아니다. 사태 후 30년 이상 지나 서서히 역사의 대열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문화혁명은 어른들의 회고담이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사실(史實)일 뿐이다. 직접 체험한 나이 든 세대에겐 문화혁명의 전체상과 진실, 교훈을 전해줄 의무가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선 사실(事實)의 기록과 전수에 충실할 것,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것, 나아가 문화예술로 승화시켜 보여줄 것 등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참 부질없다. 우리 수준이 겨우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같은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노래라도 만일 ‘오월의 노래’라면 나는 5·18 기념식장에서 공식 가요로 불리는 데 반대한다. 프랑스 샹송을 개사한 곡이지만 ‘두부처럼 잘리워진…’ 등 가사가 너무 섬뜩하고 특히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목을 조르기 위해’ ‘피가 들판에 물처럼 흐르게 하자’처럼 과격한 내용과 주변국에 대한 적의(敵意) 때문에 한때 개정 논란이 일었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도 이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르다. 차분하고 서정적이다. 내용도 어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노래 가사 어디에도 반국가적, 친북적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 대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5월 광주 황석영 작가 집에서 황씨·김종률씨 등 1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탄생했다. ‘넋풀이 : 빛의 결혼식’이라는 노래극의 맨 마지막 곡이었다. 소리가 밖으로 새나갈까 봐 창문을 담요로 막아놓고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광주에서는 이 역사적인 장소에 노래비를 세우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 판에 5·18 기념식에서 홀대한다고? 아무래도 너무 데데한 발상이다. 기념식 본행사 아닌 식전 행사에만 부르게 한다느니, 합창단이 대신 부르게 한다느니 하는 그동안의 꼼수들도 조잡하긴 마찬가지다.



 이번 소동에서 확인된 것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아직도 일부에서는 ‘불편한 진실’이었다는 점이다. 너의 5·18과 나의 5·18, 내가 아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네가 아는 ‘임을 위한 행진곡’ 사이에 일부나마 괴리가 남아 있었다. 솔직히 좀 놀랍다. 행사 때 애국가 아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어떤 정당의 행태는 다른 자리에서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다. 우리 사회가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애국가와 나란히 불리는 것, 노래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것 정도는 당연시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안 그래도 요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5·18에 대해 가르칠 때 꽤 애를 먹는다고 한다. 사태의 배경과 발단·전개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가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이미 5·18은 6·25나 임진왜란 같은 ‘역사’에 속한다. 중국 어린이들이 문화혁명을 배우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나 관련 영화를 통해 좀 더 효과적으로 가르쳐도 부족할 판에 있는 노래까지 외면하는 건 지나치다고 본다.



 만일 30년 전에 서울 서촌에 문화혁명을 주제로 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면 큰 소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체 게바라를 담은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를 수입해 상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사회의 포용력이 한 차원 커졌다는 증거다. 80년 5월의 광주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아주 부질없는 소동만은 아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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