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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60) 박 대통령의 서재

1979년 11월 28일 촬영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서재. 왼쪽 벽에 붙어있는 달력의 날짜는 10월 26일에 멈춰있다. 서재는 10·26 사태 이후 한 달 넘게 보존됐다. 사진은 서재를 완전히 치우기 직전에 촬영됐다. [사진 국가기록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지 이틀 만에 나는 JP(김종필 전 총리)가 그린 영구차 디자인을 받아 들고 신관 내 사무실로 왔다. 관청 메모지에 그려진 영구차 디자인은 버스 양편에 밖에서 투시할 수 있는 유리창을 가로로 길게 만든 모양이었다. 나는 수석실의 행정관에게 이 메모지를 주면서 총무처에 전하라고 했다.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기 때문에 제작 중인 버스를 개조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버스 조립공장의 공장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마침 조립대에 올라간 버스 차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영구차로 개조할 수 있도록 유예해달라고 조치를 부탁했다. 영구차는 총무처에서 발주했다.

텅 빈 금고 … 손수 스크랩한 신문 한국사 연재물 …



 그리고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광장에 가서 분향소 설치 현장을 챙겼다. 그때 한 실무자가 내게 다가왔다. “수석님, 저 그때 물에서 건져준 문영철입니다.”



 13살 때 일이 떠올랐다. 전북 군산 임피면에 피란을 가 있던 겨울. 산에 땔감을 구하러 가는 길에 저수지에 빠진 이웃 마을의 내 또래 아이를 구한 일이 있다. 그 아이가 사는 동네가 문씨 집성촌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총무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반가웠지만 만난 장소가 마침 박 대통령 분향소였다.



 1979년 11월 3일 박 대통령의 국장이 끝났다. 그의 서재를 정리하는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비서실장으로 최광수 의전 수석비서관이 임명됐다. 어느 날 최광수 실장이 “서재로 같이 가자”고 나에게 말했다.



 최 실장과 나, 그리고 김태호 비서관과 정병호 행정관 등이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벽에 조그만 금고가 있었다. 최 실장이 금고를 열었다.



 “아무것도 없군요.”



 최 실장의 말대로 금고 안엔 몇 장의 종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서재 안 금고는 비어있었다.



 금고를 확인한 최 실장은 나에게 말했다. “고 수석 책임 하에 서재를 정리해주세요.”



 비서실 행정관 2~3명과 함께 박 대통령의 서재를 정리했다. 2~3일이 걸렸다. 세 가지로 분류해 처리했다. 각 부처에서 올라온 결재 서류는 총무처를 통해 해당 부처로 돌려보냈다. 개인적인 물품은 유족에게 전했다. 일부는 서재에 그대로 보관하기로 했다.



 유독 나의 눈을 끈 것은 빛 바랜 신문 기사 묶음이었다. 역사학자 하현강 교수의 한국사 연재물을 1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스크랩한 것이었다. 살펴보니 비서실에서 올려 보낸 신문 스크랩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손으로 스크랩한 것 같았다. 기사 여기저기 빼곡하게 줄이 쳐져 있었다.



 박 대통령의 국장과 서재 정리로 분주하게 보내던 어느 날 퇴근한 나를 아버지가 불렀다. 야당 국회의원으로 국회만 열리면 박 대통령을 비판했던 가친이다. 그런데 이번엔 나를 꾸짖었다.



 “불난 집에 도둑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 모양이 됐지 않느냐. 비서실 수석들은 도대체 뭐한 거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아버지의 질책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이제 일괄 사표를 냅시다.”



 수석과 특보 모두 사표를 냈다. 내가 쓴 두 번째 사표였다.



 그리고 나는 칩거를 시작했다. 한 달 이상을 집에 머물며 두문불출했다. 미뤘던 독서를 했다. 예전 사뒀던 『열국지』를 그때 읽었다. 12·12 사태는 그사이에 벌어졌다. 칩거하고 있던 나는 내막을 전혀 몰랐다. “한남동에서 총성이 있었다”는 얘기를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다.



 12·12 사태 직후 청와대는 비서실 조직을 감축했다. 정무 제1·2수석을 정무수석으로, 경제 제1·2수석을 경제수석으로 통합했다.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무 2수석이었던 나에게 정무수석 자리를 맡겼다. 사실 처음엔 주저했다. 최 대행에게 “저는 행정 전문이라 정치까지 맡기엔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최 대행은 “정치에 정통한 인사를 찾아 인선을 이미 끝내놨다”고 했다.



 79년 12월 18일 나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됐다. 언론인 출신인 이원홍씨가 정치 분야를 맡는 민원수석으로 발령이 났다. 이 수석은 정치, 특히 신군부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에 주력했다. 자연스레 나는 정치 제도 부문을 담당하게 됐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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