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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정향극렬주를 맛보셨나요?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고향 안동은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 아니다. 넓지 않은 강을 끼고 자그만 마을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을 뿐 너른 들도 높은 산도 해산물 풍부한 바다도 없다. 다행히 골짝마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개울들이 있어 굶지는 않을 만치 농사가 됐고 굶지 않았으니 이웃들과 철철이 나눠 먹을 만은 했다. 동리에 잔치가 있으면 다들 음식을 해서 머리에 이고 갔다. 봉투에 현금을 쓱 집어넣는 부조가 나는 최근까지도 꽤나 민망했다.



 사람마다 잘하는 음식이 따로 있어 잔치에 음식담당이 은연중 정해져 있었다. 한들할매는 묵을, 해제아지매는 술을, 수곡할매는 감주를, 엄마와 무섬아지매는 유과와 약과를 빚어 가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포틀럭 파티쯤 될까, 아지매들은 잔치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자기 음식을 맛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수줍어했다.



 마을에서 손맛 좋기로 으뜸가는 이는 단연 우리 엄마였다. 동네어른들(이라고 해봤자 집성촌이니 다들 일가친척)은 엄마가 만든 떡이니 약과를 입에 넣으면서 “개실댁, 자네는 죽더라도 그 아까운 손을랑 부디 끊어놓고 가게!”라고 일견 살벌하기 짝이 없는 칭찬들을 했다. 엄마는 왼손으로 콩가루를 슬슬 체에 내리면서 오른손으로 쿵덕쿵덕 절구질을 해서 인절미 한 쟁반을 순식간에 만들었고, 밥솥 곁에 엿솥을 따로 걸어 시간 들이지 않으면서 금세 꺼룩한 수수조청 한 사발을 겨울 야화상에 올렸다. 아아, 얼마나 풍성한 야화였던가! 우리 집에선 저녁 먹고 둘러앉아 먹는 군주전부리를 야화(夜話)라는 말로 ‘우아하게’ 불렀다. 아마도 밤에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었나 보다.



 그런데 음식 맛이 전과 같지 않다. 일껏 잘한다는 집을 찾아가도 맵거나 달거나 조미료 맛이 혀끝을 쪼갤 뿐이다. 전에 엄마가 만들어주던 구수하고 슴슴하고 무던하고 은근하고 달던 맛들이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렸다. 콩도 팥도 밀도 쌀도 제 향이 나지 않은 지 오래다. 흥겨움과 풍요로움이 사라지니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기운도 차갑고 메말라 버석거리기가 스티로폼 상자 같다. 어째서 그런가.



 원인은 음식에 있다. 친환경, 유기농, 토종종자 같은 재료의 문제가 아니다.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음식에 녹아들지 않는 것이 문제다. 물산이 빈한한 안동은 재료가 시원찮으니 정성만은 최고조로! 눈물겹고! 눈부시게! 집어넣었다. “여자는 맵씨, 솜씨, 말씨, 맘씨의 네 씨를 갖춰야 부모 흉을 사지 않지만 그 네 씨의 근본은 음식솜씨니라”라는 말과 “무 하나로 상에 올릴 수 있는 반찬 가짓수가 많을수록 맵짠(알뜰하고 솜씨 좋은) 계집”이란 훈계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조선의 3대 조리서라고 불릴 만한 『수운잡방』(1540년), 『음식디미방』(1670년), 『온주법』(1700년)이 모두 안동에서 발견된 게 우연일 리 없다. 책이 전해져 온 광산김씨, 재령이씨, 의성김씨는 안동에서 500년 이상 터잡고 살아온 유서 깊은 문중들이다. 그들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을 삶의 기본원리로 삼으면서 음식에 들이는 깊은 정성을 그들의 이상인 ‘군자 되기’의 구체적 실천강령으로 여긴 것 같다. 봉제사접빈객은 요즘 말로 하면 ‘소통’이었다. ‘봉제사’는 통시적 소통이고 ‘접빈객’은 공시적 소통이었으니 그걸 매개하는 것이 술이었다. 『수운잡방』에 59종, 『음식디미방』에 51종, 『온주법』에 52종의 술 빚는 법이 전하는 것은 궁색한 안동 선비들이 유난한 애주를 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술에 인간이 쏟을 수 있는 최대치의 정성을 쏟아부었고 그걸 조상의 제사상에, 손님의 밥상 위에 올렸다.



 지난달엔 그리운 안동 내앞, 사빈서원 덩그런 기와지붕 아래 앉아 ‘온주법’이 지시한 대로 빚은 ‘정향극렬주’를 맛봤다. 객지를 떠돌며 나도 무슨무슨 블루라벨이니 송로버섯향이 난다는 샤토 브리옹을 웬만큼은 마셔봤다. 아아, 그러나 300년 전 정향극렬주, 정성이 진주처럼 녹아든 그 술에 비한다면 다만 싱겁고 머쓱할 뿐! 우리 곁에 이런 술을 두고도 우린 와인과 사케의 목록만을 주워섬긴다. 청와대 만찬이 노 알코올이라고? 예나 이제나 사람 사이엔 술이 필요하다. 보통 술은 안 된다. 정성이 듬뿍 담긴 술이라야 눈빛에 기운이 실린다. 유서 깊은 ‘정향극렬주’로 건배를 제의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손놀림을 보고 싶다.



김 서 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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