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여자, 남자 시계에 빠지다



‘롱다리’ 젊은이들이 발망의 바이커진 같은 프리미엄 데님이나 미국 디자이너 톰 브라운의 시그니처 셔츠로 개성을 표현하는 요즘. 불룩해진 체형 때문에 클래식 슈트만 고집하는 남성이라면 어떻게 멋을 낼까. 해결책은 시계다. 셔츠 소매안 시계가 사회적 위치와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럭셔리 아이템이란다. 남성 악세사리의 대명사인 시계가 최근엔 여성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잇백’(it bag)에 이어 ‘잇 워치’(it watch)로 진화하고 있는 명품 시계의 최신 경향을 짚어봤다.

스타일 좀 아는 여자의 선택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명품관 지하 1층. 김모(37)씨가 스위스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1억4000여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기계식 시계를 비롯해 수천만원대 제품이 줄줄이 진열돼 있다. 결혼을 앞둔 애인과 함께 온 김씨는 “좋은 차는 없어도 늘 차고 다니는 시계만큼은 명품을 고르고 싶다”며 “요즘은 어느 수준의 시계를 차느냐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남자에겐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예비 신부의 시계를 구경하겠다며 까르띠에와 반 클리프 앤 아펠 매장으로 향했다. 파텍 필립 매장에선 중년 여성 손님도 만날 수 있었다. 압구정동에서 산다는 이모(55)씨는 “까르띠에나 피아제 시계에 관심이 많았는데 워낙 유명한 브랜드라고 해서 방문했다”며 “디자인은 클래식한데 가격이 매우 비싸 아직은 좀 생소하다”고 말했다.



 명품 시계 매출은 급성장세다. 현대백화점의 최근 5년간 명품시계 매출 신장률은 26~42%에 달한다. 국내 최초로 2009년 시계 전용 매장을 연 갤러리아명품관 역시 지난해에만 럭셔리 시계 매출이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이정환 시계담당 바이어는 “과거 50~60대의 전유물이던 명품시계 시장이 20~30대 예비 신혼부부로까지 내려오는 등 시계 소비 양상이 변했다”며 “예물 시계는 보통 1000만원 전후반대, 시계를 모으는 매니어층은 5000만원대 이상을 찾는 등 시계 단가가 높아지면서 매출 신장률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시계가 명품 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르자 백화점 업계는 과거 편집매장을 브랜드별 룸 형태로 속속 바꿨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지난해 8월 브랜드별 룸 형태를 갖춘 럭셔리 워치 존을 신규 오픈했다. 기존 5개였던 브랜드에 IWC·바쉐론 콘스탄틴·예거 르쿨트르 등 5개를 추가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도 지난 2월 말 해외패션관을 리뉴얼해 오픈하면서 명품 시계 매장을 기존 264㎡(80평)에서 891㎡(270평)로 확대했다.



 국내에 명품 시계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50~1960년대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던 이들이 롤렉스를 가져오면서부터다. 대한민국 시계수리 명장 1호인 장성원(60)씨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에서 2만달러 가까이는 올라가야 소위 명품 시계의 소비가 시작된다”며 “소득이 오르면서 집, 차 순서로 고급을 추구하다 그 다음으로 시계와 오디오 명품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후반 스위스 리치몬드그룹이 까르띠에·피아제 같은 명품 브랜드를 소개하면서 국내 럭셔리 시계의 폭이 넓어졌다”며 “주얼리 기능까지 겸비한 이런 브랜드의 시계가 인기를 끈 뒤 고기능성 제품을 내세우는 파텍 필립·바쉐론 콘스탄틴·오데마피게 같은 시계가 선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고급 시계를 구입하는 비율은 남성과 여성이 7:3 정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성은 명품 중 가방에 워낙 관심이 커 상대적으로 시계 비중이 낮았다. 하지만 2~3년 전부터는 여성들도 주얼리 브랜드에서 나오는 시계뿐 아니라 기능성이 강조돼 남성들의 관심대상이었던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계 전문 브랜드들도 여성 시계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보고 신제품 출시와 마케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시계보석박람회 ‘바젤월드’에서도 진열대 맨 앞쪽은 남성 시계가 차지했지만 여성 시계 신제품군을 내놓은 업체가 많았다. 바젤월드에 다녀온 갤러리아백화점 김재환 바이어는 “블랑팡이 박람회장에 다양한 여성라인을 전시한 것을 비롯해 파텍 필립도 여성용 퍼페추얼 캘린더(100년에 한 번 정도만 날짜를 조정하면 되는 기능)를 출시했더라”며 “과거에는 여성용으론 이런 기능까지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전했다. 블랑팡 관계자는 “여성용 시계 트렌드는 크기가 작은 것에서 단순히 큰 걸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커진 사이즈에 전문 기능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블랑팡이 올해 대표모델을 처음으로 여성 시계로 선정했는데, 성장하고 있는 여성시계 시장을 잡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예거 르쿨트르도 여성라인을 강화했고, 여성용에도 투르비옹(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줄이는 장치)이나 안이 보이는 스켈레톤 타입을 적용하는 등 내부 기능에 중점을 둔 시계가 등장하고 있다. 고급 기능이 많이 들어가는 시계는 가격이 수억원에 달하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각 브랜드가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여성만 놓고 보면 국내에선 여전히 까르띠에·피아제·쇼메·불가리·반클리프앤 아펠 같은 주얼리브랜드의 시계가 꾸준히 인기다. 시계 전문 브랜드 제품의 구매자는 남성이 80%지만, 주얼리브랜드에서 시계를 사는 사람은 여성이 70%를 차지한다. 반지나 팔찌, 목걸이처럼 보석 장신구 개념으로 시계를 고른다는 의미다. 반클리프앤아펠 매장의 한 직원은 “여성들이 과거에는 다이아몬드 장식 시계를 주로 구입했는데 요즘은 기계식 시계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스위스 시계 전문 브랜드들이 국내에 제품을 론칭하거나 매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여성용 상품을 선보이는 것도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다. 국내 업체로서 이번 바젤월드에 참가해 ‘김연아 시계’를 내놓은 로만손의 정혜정 홍보팀 과장은 “샤넬이 수백만~1000만원대 여성용 고급 시계를 보여주면서 패션 브랜드도 고가 시계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며 “디올도 재작년부터 여성 시계에 힘을 많이 쏟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남성 시계시장이 포화 상태를 보일 기미가 나타나자 브랜드마다 여성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며 “파텍 필립은 아빠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시계라고 광고하다가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카피를 바꾸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녀 손목 시계로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사실상 사라진 시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계에 여성들이 눈길을 보내게 된 배경을 일부에서는 여성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상 때문으로 해석한다. 윤인영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곳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시계는 원래 남성의 비즈니스 아이템인데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은 남성과 비슷해서 고가의 가방이나 큰 주얼리를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실용성이 강한 가방이나 시계를 찾는다는 것이다. 고급 시계를 차면 본인의 만족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전문적이면서 패션 감각이 있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여성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과 관련해서도 윤 스타일리스트는 “과거 작고 예쁜 차를 선호했던 여성들이 요즘은 스포츠카나 덩치 큰 SUV를 타기도 한다”며 “패션에서도 큰 어깨나 플랫슈즈가 유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 전선에 여성이 뛰어들면서 남성화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스포츠나 레저를 즐기는 여성도 늘면서 옷을 남성과 함께 입는 유니섹스 모드가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들이 크로노그래프(1초 이하 간격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로, 서브 다이얼이 한 개 이상 장착된 것) 기능이 있는 기계식 시계나 고가의 아웃도어 시계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왔다는 것이다. 윤 스타일리스트는 “기능적인 면이 강조된 커다란 남성시계는 여성이 차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스타일리시하게 보인다”며 “백은 유행을 많이 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지만 시계는 물려쓸 수도 있어 고가의 제품을 사도 좋다는 게 패션업계의 인식”이라고 소개했다.





2013년 여성 시계 신상품



왼쪽부터 차례대로 까르띠에 `팬더 바게트 워치`,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레이디스 문페이즈`, 샤넬 `마드모아젤 프리베 문 앤 꼬메뜨 다이얼`, 로만손 `그레이스 온 아이스 더 퀸`, 블랑팡 `우먼 크로노그래프 그랜드 데이트`, 브레게 `레인 드 네이플 데이·나이트`


까르띠에 ‘팬더 바게트 워치’



까르띠에가 올 1월 제네바에서 열린 고급시계박람회 SIHH에서 선보인 41개의 주얼리 워치 컬렉션 ‘레 저르 파빌뢰즈 드 까르띠에’ 중 하나. 에메랄드 눈에 온 몸이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표범이 떨어질세라 잔뜩 힘을 준 모습으로 시계에 매달려 있다. 역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시계와 어우러져 이 제품이 시계인지 주얼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수동으로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수동 태엽 기계식(매뉴얼 와인딩 미케니컬) 무브먼트를 사용했다.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레이디스 문페이즈’



몇 년전부터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시계 개발에 관심을 가져온 파텍 필립이 올해 장식성과 기능성을 겸비한 컴플리케이션 문페이즈를 내놨다. ‘달의 형상’이라는 이름처럼 시간에 따라 6시 방향에 있는 작은 다이얼에 달이 뜨고 진다. 122년 만에 단 하루의 오차만 허용하는 파텍 고유의 수동 태엽식 215 PS LU 무브먼트를 장착했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66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다.



샤넬 ‘마드모아젤 프리베 문 앤 꼬메뜨 다이얼’



패션 브랜드이지만 하이주얼리&워치 부분에서 주얼리 전문 브랜드나 시계 전문 브랜드 못지 않은 평판과 인기를 얻고 있는 샤넬이 올해 새롭게 내놓은 주얼리 워치 컬렉션 중 하나.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달 얼굴이 시간을, 꼬리를 길게 뺀 별(꼬메뜨)이 분을 표시한다. 60개의 다이아몬드가 케이스를 따라 세팅돼 있는데다 시계 버클에도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차분하면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샤넬의 매력을 오롯이 담았다.



로만손 ‘그레이스 온 아이스 더 퀸’



김연아 선수를 뮤즈 삼아 만든 로만손의 주얼리 워치. 로만손은 한국 시계제조업체로는 유일하게 1997년부터 스위스 바젤월드에 참가하고 있다. 피겨 챔피언으로 인지도가 있는 김연아 선수를 모델로 내세워 기획한 것으로, 바젤월드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시장이 커지고 있는 여성 시계 트렌드에 맞춰 36㎜ 크기로 만들었고, 주얼리 워치로서 화려함을 주기 위해 케이스와 밴드를 큐빅으로 장식했다. 450개 한정품으로 국내에선 10일부터 판매한다. 뒷면에 김연아 선수의 싸인을 새겼다.



브레게 ‘레인 드 네이플 데이·나이트’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시계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떨친 제품의 2013년 모델. 시·분과 낮·밤을 보여주는 다이얼 두 개가 마치 하나의 무브먼트를 표현하듯 절묘하게 디자인됐다. 시간에 따라 해와 달이 춤추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은 이 시계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 포인트. 로마자로 표시된 게 시간이고, 브레게 스타일의 아라비아 숫자는 24시간 단위를 나타낸다. 업계 관계자가 “레인 드 네이플은 ‘청담동 사모님’이라면 한 개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할 만큼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블랑팡 ‘우먼 크로노그래프 그랜드 데이트’



올해 바젤월드에 선보인 여성용 크로노그래프 워치. 직경 38.6㎜의 은은한 빛이 감도는 자개 다이얼에 다이아몬드로 베젤을 장식했다. 3시·9시 방향에는 아라비아 숫자의 크로노그래프 창이 배치됐고, 무브먼트는 자체 제작한 칼리버 26F8G를 사용했다. 부품만 총 495개가 쓰였다. 블랑팡은 1930년부터 정기적으로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내놓고 있는데, 올해 역시 바젤월드에서 다양한 여성용 시계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무브먼트(movement)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기계 장치로 자동차로 치면 엔진에 해당한다. 시계 제조사 기술력이 집약된 장치다. 투르비옹(tourbillon) ‘회오리 바람’을 뜻하는 프랑스어. 1975년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중력의 영향으로 생기는 시간 오차를 최소화하려고 1분에 1회전씩

돌도록 고안한 장치.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 28일, 30일처럼 달마다 다른 날짜와 윤년까지 계산해 넣은 달력 기능. 100년에 한번 정도만 날짜를 조정하면 된다.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 1초 이하 간격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 스톱워치 기능 등으로 쓰이는데, 시계 내부에 서브 다이얼이 한 개 이상 장착된다.



●컴플리케이션 워치(complication watch) 일반적인 시계 장치 외에 투르비옹, 퍼페추얼 캘린더처럼 복잡한 장치나 기능을 추가한 시계.





김성탁·윤경희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