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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게 뭔지 스스로 발견하라"

사진은학교 본관 건물.
[사진 경기과학고]
2013학년도 대학 입시 결과가 나오자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대 우선선발 전형에서 과학고보다 영재학교 출신이 훨씬 많이 합격한 것이다.

영재학교 전환 후 첫 졸업생 배출한 경기과학고 가보니

특히 경기과학고는 서울대에 지원한 110명 중 20명이 우선선발돼 영재학교 중 지원자 대비 우선선발전형 합격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 학교는 2010년 영재학교로 전환한 뒤 이번에 첫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졸업생 122명 가운데 서울대 63명, KAIST에 87명(중복 합격 포함)이 합격했다.



학생들이 말하는 경기과고

“학원 뺑뺑이 불가능 ··· 부족한 과목은 선생님이 특별지도”




Q. 영재학교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 학구적일 것 같다.



A. 아니다. 활기차고 재미있다. 거의 모든 수업이 발표와 조별 활동으로 이뤄져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가끔 선생님이 그냥 가르쳐주면 될 걸 내가 왜 연구하고 파워포인트(PPT) 파일을 만들고 있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직접 발표한 내용이 확실히 기억에 오래 남더라. 발표하면서 친구들이랑 엉뚱한 실수도 하지만 정말 잘하는 친구에게 자극을 받기도 한다. 매 순간이 재미있고 의미 있다.



Q.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영재학교 입학을 목표로 유아 때부터 사교육을 시킨다는데.



A. 유아 때부터 학원을 다녔다는 선후배나 동기는 보지 못했다. 딱히 강남 출신이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수학과 과학을 꾸준히 좋아했던 친구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을 뿐이다. 다녀보니 성적보다 적성이 중요하다. 사교육으로 좋은 성적은 만들 수 있겠지만 이공계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Q.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 수업을 따라갈 만한가.



A.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중에 학원 뺑뺑이를 도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주말마다 외출할 수 있지만 집에 가는 학생이 드물다. 학습실 시설이 워낙 좋아 학교가 공부하기 편해서다. 또 부족한 과목이 있으면 학교에서 해당 과목 선생님이 특별 지도를 해주기도 한다. 과목별로 특별하게 잘하는 동기나 선배에게 물어가며 그룹 스터디를 하는데 재미있고 효과도 좋다. 사교육 필요성은 못 느낀다.



Q. 기숙사 생활은 재미있나.



A. 보통 4인 1실이나 3인 1실을 쓴다. 8주에 한 번씩 방 멤버가 바뀌기 때문에 특별히 다툴 일이 없다. 우리 학교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기숙사 저녁 점호 시간이다. 밤 12시부터 40분간 점호 준비를 하면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 시간이 정말 즐겁고 소중하다. 여학생은 한 학년에 10명 남짓 정도로 숫자가 적어서인지 관계가 더 돈독하다. 생일 때마다 한 방에 모여 케이크를 나눠 먹는다. 남자친구 사귀는 애가 있으면 장난 삼아 놀리기도 한다.



Q. 이성교제하는 학생이 많나.



A. 많지는 않아도 있다. 학교에서도 이성교제에 대해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으니 선생님들이 믿어주는 눈치다. 특히 우리 학교 여학생이 워낙 남학생에게 관심이 없다. 다들 털털하고 무덤덤한 스타일이라 외모를 꾸미는 일도 드물다. 전교생 수가 워낙 적다 보니 남녀를 떠나 다들 친하게 어울려 지낸다.



Q. 학과 공부에 개인별 연구 논문 준비, 거기에 동아리 활동까지…. 정말 바쁘겠다.



A. 아니다. 정말 많이 논다. 일반고 학생보다 자유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고3이 되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절반가량이 공강 시간이다. 졸업할 때까지 172학점을 이수하면 되는데, 1학년 때가 가장 바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유가 있다(※경기과학고의 한 학기당 이수 학점은 1학년이 필수 28학점에 실험 16학점, 2학년은 25학점, 3학년 17학점이다). 그렇다고 멍하니 자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별로 없다. 다들 공부도, 동아리 활동도 집중력을 갖고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매 순간 뭔가를 성취하고 있다는 희열감이 든다.



Q. 경기과학고 진학을 꿈꾸는 학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A. 겁내지 말고 도전하라는 거다. 수업만 잘 따라가면 부족한 공부는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 성적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건 대인관계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로는 학교 생활에 절대 적응할 수 없다. 각자가 아는 내용을 서로 가르쳐주다 보면 시너지가 나서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개방적인 마음 자세와 소통 능력을 갖춘 후배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경기과학고 학생은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이면 연구실을 찾아 자신이 정한 연구 주제에 대한 탐구 활동을 이어간다. 연구실은 학생들이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게 늘 개방돼 있다.


경기과학고 학업 과정은 대학원과 비슷하다. 학생 각자 자신의 연구 주제를 정한 뒤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업을 신청해 수강하는 방식이다. 학생 스스로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을 발견하는 게 핵심이다. 연구 주제를 찾는 데만 1년 이상 투자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찾은 연구 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수업은 학년이나 학급 제한 없이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는 무학년제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기존에 없던 수업이라도 연구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이 새 강좌를 요구하면 외부 교사를 초빙해서라도 개설한다. 또 학교의 모든 시설은 항상 개방돼 있다. 담당 교사를 찾아 기자재 사용을 일일이 허락 받을 필요 없이 공강 시간이면 자유롭게 아무 실험실에 가서 못다 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자연탐사도 일반 고등학교와 다르다. 다른 학교처럼 단체로 학생을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학생이 개별적으로 연구 주제에 맞게 탐사 지역과 기간을 정하면 학교는 인솔교사를 정해주고 탐사비를 지원한다. 김민수(물리) 교사는 “학생이 자신의 수업과 활동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면 학교는 학생이 계획을 이룰 수 있게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과학 영재가 모였다 해도 고등학생 수준에서 학생 스스로 연구 과제를 찾아 성과를 내는 게 가능한 일일까.



 김혁 연구부장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익숙한 신입생에게 ‘자신의 궁금증이 무엇인지 발견하라’고 주문하면 당황하고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빨리 학습 진도부터 나가라”고 요구하는 학부모도 많다. 그러나 이 학교 교사들은 신념을 꺾지 않았다.



 김 연구부장은 “영재학교로 전환한 뒤 상위권 대학 진학률보다 학생 탐구력 신장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공계에 진학해 이 분야 학자로 자라야 할 엘리트라면 고교 시절 교과 성적 관리에 치중하기보다 연구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영호 교장은 “학생들이 찾은 주제와 해결 과정이 상당히 치밀해 대학 교수가 봐도 깜짝 놀랄 것이 많다”고 말했다.



 유규상(3학년)군의 ‘미생물을 활용해 토양 산성화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그 한 예다. 유군은 이 주제를 찾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토양이 산성화하는 원인이 주로 산성비 때문이거든요. 산성비 주요 성분이 질산과 황산인데, 황산은 탈황장치라는 기계가 있어서 해결 가능하지만 질소는 토양에서 제거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교과서에서 ‘질소 순환 생태계’라는 내용을 배우다 미생물을 활용하면 질소를 제거할 방법이 있을까 싶어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가 하면 김재혁(3학년)군은 조개껍데기를 이용해 생명체의 절대연령을 측정하는 연구에 푹 빠져 있다. “틈만 나면 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조개를 사 껍데기를 부숴가면서 결정 내부 구조를 들여다본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구 수업에 따른 성과도 바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최고의 논문 대회로 불리는 삼성 휴먼테크에서 경기과학고가 고등 부문 ‘최다수상교’로 선정됐다.



 

이렇게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입시 성적이 좋으니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민수 홍보부장은 “영재학교 학생은 입학사정관제 등 주로 특별전형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수능 보는 일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특별전형에서는 내신성적에 해당하는 평균학점(GPA)도 중요하지만 고교 시절 연구 활동, 그리고 자기 계발 활동과 관련한 포트폴리오가 필수적이다. 경기과학고 학생은 3년 동안 연구를 지속하면서 과학 탐구 역량의 탁월성을 입증 받아 대학 진학에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자연히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일반 고등학교보다도 오히려 낮은 편이다. 홍준영(3학년)양은 “학생마다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전교 석차 같은 획일화한 지표로 학생을 서열화할 수 없다”며 “자기 연구 주제에 신경 쓰다 보니 남의 성적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재학교 학생들도 수학엔 부담을 느낀다. 비중이 높은 데다 난도도 높아 중학교 때 최상위 성적을 받던 학생도 한계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교육에 의지하는 학생은 별로 없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 학원 갈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영재학교 교육 시스템이 워낙 달라 사교육이 성적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실력은 학생끼리 그룹 스터디를 하며 메워 나간다. 홍양은 “시험 기간이 되면 과목별로 실력 좋은 친구를 중심으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모르는 부분을 묻고 답해 주는 게 일상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험 기간에 ‘노트 빌려줘’라고 문자를 보냈을 때 ‘싫다’고 답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며 “다들 ‘자습실 사물함에서 가져가’라고 흔쾌히 허락하고, 빌려가는 친구도 노트나 책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영재가 모인 데다 학생 각자 연구에 몰입해 있어 밖에서 보면 공부벌레로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운동이나 사진, 악기 연주 등에도 능숙한 팔방미인이 적지 않다. 경기과학고의 다양한 동아리 덕분이다. 영재학교답게 과학 학술 동아리가 가장 탄탄하지만 노래 부르기나 배드민턴 등 예체능 동아리도 40개가 넘는다. 전 교장은 “교장실 바로 아래가 악기 연주실”이라며 “공강 시간이면 여기서 드럼 치고 기타 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고 말했다.





신입생 이렇게 뽑아요



“영재학교는 미래의 과학자를 양성하는 학교입니다. 과학에 재능과 열정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 과학자로서의 역량과 마음가짐을 심어주는 게 영재학교의 설립 목적이지요.”



 
김민수(사진) 홍보부장은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 학생보다 과학에 헌신하고자 하는 학생이 영재학교에 올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 과학도가 갖춰야 할 소양으로는 창의성·도전정신·인성을 꼽았다. “엘리트, 즉 영재를 판별할 때 머리(지적인 능력)만 본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게 가슴(인성)입니다. 자신이 발견한 과학 이론이나 기술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치열하게 고민할 줄 모른다면 훌륭한 과학자라 할 수 없죠.”



 입학 전형에도 인성을 갖춘 과학도를 선발하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1차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자기소개서·추천서·영재성 입증 자료 등 네 가지 서류를 통해 기본 역량을 검증한다. 전국에서 2500명 정도가 지원하는데 2000명 이상 통과시킨다. 2단계에서 영재성 검사를 한다. 수학·과학 과목에 대한 통합 질문이나 창의성을 검증하는 내용이다. 교과 지식 외에 유추해서 풀어야 하는 고난도 문제로 구성했다. 여기에서 1700명 이상이 대거 탈락한다.



 3단계부터는 심층 면접을 통해 과학도로서의 잠재력과 함께 인성 검증을 시작한다. 1단계에 제출한 서류, 특히 영재성 입증 자료의 진위 여부도 여기서 판별한다. 서류 내용에 거짓이 있으면 입학을 취소한다. 김 홍보부장은 “간혹 영재성 입증 자료에 대해 물으면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리는 학생이 있다”며 “이런 학생은 사교육이나 컨설팅 업체를 통해 서류를 준비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성 평가를 위해서는 갈등 상황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예컨대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자료를 검색하는데 교사가 제재를 가한다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고 물어보는 식이다. 김 홍보부장은 “조별 활동이나 팀별 연구처럼 협업으로 이뤄지는 수업이 많다”며 “자기 공부만 챙기는 이기적인 학생보다는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융화력이 좋은 학생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경기과학고 로고.
 4단계 전형은 창의성 캠프다. 토론과 연구 설계로 학생을 평가한다. 토론 평가에서는 학생들에게 같은 주제에 대한 찬성 측과 반대 측, 그리고 평가단의 역할을 계속 바꿔 맡기며 논리적 사고력을 검증한다. 연구 설계는 개별 평가다. 주어진 탐구 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인 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실제 실험을 해 보이면 된다. 팀 미션도 주어진다. 지난해에는 6명이 한 팀을 이뤄 ‘풍선으로 도버 해협을 건넌 사람’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은 뒤,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실험을 설계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최종 합격 인원은 지원자 2500여 명 가운데 120명이다. 합격률이 채 5%도 채 안 된다. 여학생 합격자는 매년 10명 남짓이다. 경기도 교육청의 장학관과 대학 교수, 경기과학고 교사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합격자를 결정한다. “학교 입학담당관의 권한이 큰 자율형사립고나 특목고와 달리 영재학교는 심의위원회를 통해 입학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전형 과정이 투명하게 관리된다”는 게 경기과학고의 설명이다.





●영재학교

영재교육진흥법 적용을 받아 전국 단위로 과학 영재를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고등학교. 과학고의 경우 초·중등교육법 적용을 받아 광역시·도 단위에서 신입생을 선발한다.

수업 방식도 다르다. 영재학교는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이수할 필요가 없으며, 무학년제로 운영한다. 과학고처럼 조기 졸업을 하는 건불가능하다. 영재학교는 경기과학고를 포함해 서울과학고·한국과학영재학교·대구과학고·광주과학고·대전과학고 등 전국에 6곳이 있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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