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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팔달문도 함께 열렸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八達門)이 3년여의 복구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됐다. 서울 숭례문이 서울로 들어가는 남문이라면 팔달문은 전국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문이다. 화성(華城)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964년 9월 보물(402호)로 지정됐다. [사진 수원시]


세계문화유산인 경기도 수원화성(華城)의 팔달문(八達門)이 3년에 걸친 해체·보수공사를 마치고 최근 공개됐다. 수원화성의 남대문 격인 팔달문이 한양도성의 남대문인 숭례문과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복원돼 일반에 개방된 것이다.

붕괴 위험 있던 세계문화유산, 3년 만에 보수 완료
기와 다시 이고 목재 방염 처리 … 숭례문 빼닮아



 수원시 팔달로 2가에 있는 팔달문은 조선 정조 18년인 1794년에 지어졌다. 다산 정약용이 설계한 화성의 4대 문 중 남문에 해당하는 누각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누각과 옹성을 자랑하는 목조 문화재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성문 형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팔달은 ‘사통팔달로 막힌 데가 없다’는 의미다. 1964년 9월 가치를 인정받아 수원화성 화서문과 함께 보물(402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팔달문은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정밀안전진단 결과 지붕 하부 서까래가 낡아 떨어져 나가고 문루의 대들보까지 기울어져 붕괴 위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수원시는 2010년 6월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착수했다.



건물 1층과 문루 등 목조 건축물을 모두 해체한 뒤 낡은 자재는 교체하고 보강이 필요한 부재는 내구성과 강도를 높여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최대한 원형을 살리기 위해 해체한 부재 대부분은 재사용했다. 보수공사에는 47억원의 예산이 쓰였다.



기와를 다시 이고 단청을 새로 칠했다. 옹성 누각과 벽도 보수하고 보존 처리했다. 목재에는 화재 예방을 위한 방염 처리를 했다.



복원 공사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전흥수 대목장과 도편수 김용덕, 단청장 정세훈·장정일, 석장 김건태, 와장 이유영 등이 참여했다. 팔달문 복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다. 화성의 건축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 투입된 인부 수와 건축재료의 출처, 사용기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완역본이 없어 그전까진 전문가들이 일부 내용을 번역하면서 화성 보수작업 등을 했다. 그러던 것을 경기문화재단이 1997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완역본을 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220년간 수원을 지켜준 팔달문의 멋진 모습을 시민들이 다시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팔달문의 외형이나 규모는 숭례문과 비슷하다. 건축 당시 숭례문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숭례문이 성문 역할을 한 반면 팔달문은 군사시설까지 겸했다. 그래서 팔달문엔 숭례문에는 없는 옹성(이중성벽)과 상층(2층)에 총을 넣을 수 있는 구멍(총안)이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오선화 학예사는 “화성성역의궤 완역본을 참조해 좀 더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화성박물관은 팔달문 준공을 기념해 7월 21일까지 팔달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자료 등을 전시한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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