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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지시받는 화물기사, 근로자로 봐야"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K사에서 16년간 화물 배송업무를 담당해 온 정모씨는 일하면서 한 번도 이 회사 직원이라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다른 직원들과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고, 회사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상급자 지시에 따라 화물을 배송했다. 매달 정해진 급여를 받았고 때론 청소 같은 잡무도 했다. 하지만 K사 직원이라는 자부심은 2011년 퇴직하면서 깨졌다. 회사 측은 “자영업자 신분으로 위탁계약을 맺고 일한 만큼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정씨에게 통보했다. 정나미가 떨어진 정씨는 “회사가 퇴직금뿐 아니라 그동안 연·월차 수당까지 모두 5400만원을 주지 않았다”며 이 회사 김모(73) 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수원지검은 수사한 뒤 그해 김 대표를 재판에 넘겼고 1·2심은 벌금 5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상고심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7일 원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자기 소유 차량으로 일을 하고 실비 보상 성격의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종속적인 관계에서 회사 지시에 따라 일을 한 만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퇴직금 가운데 일부에는 차량 임대료와 연료비 등이 포함된 만큼 이 부분을 다시 계산하라”며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슈추적] 대법, 퇴직금·수당 지급 판결

 정씨처럼 외견상 특정 회사에 소속돼 일하지만 회사 측이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특수고용직 근로자’로 불린다. 학습지 교사와 골프장 캐디, 레미콘 기사,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간병인, 대리운전기사, 방송국 구성작가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정씨는 다행히 구제가 된 케이스다. 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와 고용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을 맺어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고 4대 보험 가입이 안 된다. 각종 수당과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대법원 판례도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캐디 등 대부분의 업종에 대해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입차량 기사의 경우 정씨 같은 화물차 기사 등 일부 업종에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급심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췄다면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일정한 조건이란 고정급여·작업지시·근로연속성 등과 작업도구 제공 여부, 사업의 수익이나 위험을 누가 떠안느냐 등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재능교육에서 해고된 뒤 5년간 복직 투쟁을 벌여 온 학습지 교사들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에서 “회사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무대가로만 생활한 만큼 최소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지위는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정한 조건’에 대한 입장 차는 여전하다. 지난해 5월 서울고법은 골프장 캐디 하모(43·여)씨가 낸 해고무효소송에서 “근로계약 관계라고 볼 수 없다”며 하씨 청구를 기각했다.



 고용노동부 김남용 사무관은 “특수고용직의 노동 형태가 워낙 다양해 같은 업종이라도 근로자로 인정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정확한 통계도 잡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는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라고 신고된 기록을 근거로 43만8000여 명을 특수고용직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100만 명, 노동계에선 2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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