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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독촉시스템 '빚 해결 도구' 악용

대법원이 운영 중인 전자독촉시스템이 추심업자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번거로운 소송 없이 신속하게 채무 관계로 인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를 일부 추심업자들이 ‘빚 받아 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추심업자가 채권자 신분 위장
홈피 접속해 법원 지급명령 신청
빚 수백억 받아낸 뒤 수고비 챙겨
검찰, 4명 구속 … 수백 명 조사

 전자독촉시스템은 채권자가 홈페이지(ecf.scourt.go.kr)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돈을 갚으라는 신청서만 작성하면 법원이 채무자에게 이 내용을 우편으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2주 안에 채무자가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지급명령 결정이 내려진다. 이는 민사소송의 1심 판결과 같은 집행력을 갖는다. 번거로운 소송 절차나 직접 법원 민원실로 찾아가는 수고 없이도 법원의 지급명령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채권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법원은 2008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이 전자독촉시스템이 채무 관계를 해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추심업자들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부산에서 추심업체를 운영하는 유모(45)씨는 2년쯤 전 동료 업자로부터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난동을 부리거나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협박 등을 하지 않아도 쉽게 채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전자독촉시스템은 공인인증서를 가진 채권자 본인 또는 대리인 자격으로 변호사만 채무 관련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유씨는 채권자들에게 “돈을 빨리 받아내는 데 필요하다”며 공인인증서,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받아냈다. 채권자들에게 전자독촉 신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지급명령이 나면 관련 서류를 갖고 채무자를 찾아가 빚 청산을 독촉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60여억원의 채무를 해결했다. 유씨의 추심업체가 신청한 전자독촉만 6000여 건에 이른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유씨와 같은 추심업자들이 전자독촉시스템을 악용하고 있다는 혐의를 포착해 수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 분당에 있는 대법원의 전산정보시스템을 두 차례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결과 추심업자들이 이 시스템을 악용해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박윤해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는 “추심업자들이 전자독촉시스템을 활용해 채무를 받아낸 뒤 진짜 채권자로부터 일정 비율의 수고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부산과 대구 유씨를 비롯, 지역에서 활동하는 추심업자 및 관계자 4명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10여 명을 불구속 상태로 조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수백 명의 추심업자와 관련자가 검찰 수사망에 올라 있다.



 황재선(46) 변호사는 “전자독촉시스템은 악용의 소지가 있다”며 “법원 민원실에서 채권자나 대리인 신분을 확인하고 접수하는 정식 절차가 생략되기 때문에 지급명령이 내려져도 채무자가 기판력 부족을 주장하면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기판력이란 이미 내려진 결정에 대해 채권·채무자 사이에 더 이상 효력을 다툴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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