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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병문안 온 미 한인 '전쟁영웅' 제이슨 박

지난해 12월 2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제이슨 박 중위를 문병하고 있다.
2012년 12월 12일.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된 지 꼭 40일째 되던 날이었다. 소대원들과 함께 도보 순찰을 나간 그는 탈레반이 설치한 IED(급조폭발물)를 발견했다. “모두들 뒤로 물러서”라고 소리친 그는 곧이어 강한 폭발음과 함께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걸 느꼈다. 순간이었다. 두 다리와 손가락 2개를 잃었다. 하지만 그의 신속한 지휘 덕분에 다른 소대원들은 모두 무사했다. 워싱턴 인근 월터 리드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수십 차례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 지금 그는 의족을 단 채 재활훈련 중이다.



아프간서 두 다리 잃은 중위

 한국인 2세로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미 육군 보병2사단 제이슨 박(22) 중위 얘기다.



 “처음엔 다리를 잃었는지 몰랐다. 다른 소대원들이 무사한지가 더 걱정됐다. 두 다리를 잃었지만 내가 한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소대원들부터 피신시킨 제이슨은 미 국방부로부터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사고가 난 지 열흘 만인 12월 21일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월터 리드병원으로 직접 문병을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손을 잡고 “미국을 대신해서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라.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면 꼭 걸어서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해달라”고 당부했다.



제이슨 박(左), 박영태(右)
 조 바이든 부통령 부부·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등도 차례로 병실을 찾았다. ABC 방송의 하와이 자회사인 KITV, 워싱턴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제이슨의 얘기를 ‘전쟁영웅’으로 다뤘다. 제이슨의 웨스트포인트 동기생 중 전쟁에 나가 부상한 건 그가 유일했다.



 제이슨의 아버지 박영태(52) 예비역 대령도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다. 박씨는 1983년, 제이슨은 2011년 각각 소위로 임관했다. 부자가 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건 한인으론 처음이다. 제이슨은 “웨스트포인트를 가게 된 것도 군인인 아버지가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열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 박씨는 2008년 한국계 최초로 국방무관에 임명돼 말레이시아 미 대사관에서 3년을 근무했다. 주한미군 2사단, 한·미연합사 소속으로 모국 한국에서도 7년을 복무했다. 30년 군 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 예편했다. 하와이에서 열린 예편식 때는 아들 제이슨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잔잔한 감동을 줬다.



 박씨는 “제이슨의 소식을 듣고 처음엔 많이 놀랐다”며 “군인으로 있는 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순간에도 소대원들을 먼저 생각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들의 의족을 응시하는 박씨의 눈은 금세 빨개졌다.



 제이슨은 요즘 매일같이 걷기 연습과 손가락 훈련을 한다. 웨스트포인트 재학 시절 축구특기생이었던 그는 달리기까지 욕심을 내고 있다.



 “두 다리가 없어도 나를 포기시킬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다. (의족이어서) 남들보다 조금은 느릴 수 있다. 그러나 내 꿈과 희망은 멈춰있지 않다.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제이슨은 6개월 뒤 군 내 의료판정단으로부터 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판정을 받는다. 아버지 박씨는 “사이버 부대도 있고, 행정이나 작전계획 등 사무실에서 일할 기회도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이슨이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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