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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59) 10·26사태 ②

1979년 10월 27일 청와대 본관 대접견실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졌다. 문상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규하 국무총리, 구자춘 내무부 장관, 김치열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수석비서관들이 속속 청와대 본관에 도착했다. 최 총리, 구 장관, 김 장관이 먼저 비서실장실로 들어갔다. 수석들은 실장실과 붙어 있는 전실(前室)에서 기다렸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최 총리와 두 장관이 비장한 표정으로 실장실에서 나왔다. 그다음 나를 포함한 수석들이 실장실에 들어섰다. 김계원 비서실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계원 실장 검은색 정장 윗도리에 핏자국이 … "



 “대통령께서 유고입니다.”



 우리 모두 충격으로 넋 나간 얼굴이 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임방현 공보수석이 정적을 깨고 질문했다.



 “유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임 수석은 기자 출신이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하다가 청와대로 왔다. 김 실장은 임 수석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 수석들은 청와대를 지켜 주십시오.”



 그 말만 하고 김 실장은 사무실을 떠났다. 그는 최 총리 일행을 따라 육군본부로 향했다. 김 실장이 떠난 사무실에 수석들만 남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들 짐작도 못한 채 비통하고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임방현 수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계원 실장의 검은색 정장 윗도리에서 핏자국을 본 것 같아요.”



 다른 수석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검정 옷의 얼룩을 언론인 출신인 임 수석은 놓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충격과 비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수석들은 문제를 일으킨 인물을 차지철 경호실장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석들이 청와대 사무실만 지키고 있을 순 없었다. 수석 중 한 사람을 육본으로 보내 유고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했다.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유혁인 정무 제1수석이 대표로 육본에 갔다. 시간이 지나 새벽 3시쯤 김계원 실장이 청와대로 돌아왔다. 그때야 김 실장은 우리에게 유고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청천벽력과 같은 내용이었다.



 국장(國葬)을 담당하는 부처는 총무처였다. 심의환 총무처 장관은 10·26 사태가 있기 불과 나흘 전인 1979년 10월 22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장관이 공석이라 청와대 내에서 총무처를 관장하고 있는 내가 불가피하게 총무처 장관 직무대행 비슷한 일을 해야 했다.



 10월 27일 아침 청와대 본관 소접견실에 빈소를 급히 만들었다. 제일 처음 빈소를 찾은 문상객은 통일원 이용희 장관과 동훈 차관 일행이었다. 곧이어 빈소는 대접견실로 옮겨졌다. 국무회의를 여는 큰 회의실이다. 대접견실의 양옆과 뒤 세 면에 의자를 쭉 둘러 벽에 붙도록 배열했다.



 조문객들이 많았다. 그들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밤을 새웠다. 모두 삼삼오오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나눴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였다. ‘앞으로의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삼면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는 돔 비슷한 구조의 천장에 부딪혀 집합적으로 반사되며 공명음을 냈다. ‘웅성웅성’ ‘사각사각’. 아니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기묘한 소리였다. 나는 빈소에서 잊을 수 없는 그 기이한 소음을 들으며 이틀 밤을 새웠다.



 빈소를 한창 지키고 있을 때 김태호 청와대 행정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재 서류가 많이 밀렸습니다. 왜 (사무실로) 안 내려오십니까. 신관으로 내려와서 처리해 주셔야겠습니다.”



 엄중한 시기에 웬 한가한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김 비서관. 지금 무슨 서류에 결재할 게 있죠?”



 실무자 얘기로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이 일이 내가 10·26 때 청와대를 이틀간 비웠다는 낭설로 와전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대통령의 생활공간인 청와대 본관 2층에선 박씨, 육씨 그리고 조카사위인 JP(김종필 전 총리) 세 집안이 모여서 장례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여기서 결정된 의견을 모아 비서실에 전달하는 일은 주로 JP가 했다. 9일장으로 결정됐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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