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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34명…공판 34일의 강행군

34일 동안 13회의 공판을 열고 집중심리를 해온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대남공작단 사건」은 13일 낮12시20분 피고인 34명이 전원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강행군의 종말을 내렸다.

사형 2명, 무기징역 4명, 실형 최고15년에서 최하3년까지의 유기징역이 13명, 11명은 집행을 유예했고, 형의 면제가 3명, 선고유예 1명으로 정보사범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매머드 간첩사건을 다루어오던 대법정은 이제 적막에 잠겼다.

동백림공작단사건 판결의 뒤안|"피고인 인격, 판결에 영향|법정태도 보면 형량 떠올라 검사구형에 신경 안 썼다"

서울형사지법 621호 판사실(합의3부) 주변에서 흘러나온 판결에 대한 뒷이야기를 모아 판결의 뒤안을 훑어본다.

『검사의 구형이란 변호인의 변론과 같이 법관의 판결에 대한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습니다.』

재판을 마치고 판사실에 돌아와 허탈감에 휩싸인 듯한 표정의 김영준 재판장은 다른 사건 때와 같이 이번 판결에 있어서 검사의 구형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사형이 구형된 최정길 피고인이 징역15년을 선고받은 것은 간첩죄가 인정이 되나 범행당시의 나이가 어렸고 평양에 가게된 동기(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범행시의 환경과 자신의 간첩활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자기중심적이었다는 때문이다.

정하룡 피고인에게 무기징역(구형사형)이 선고된 것은 『사형·무기·7년 이상의 유기징역 중 무기를 선택했다』는 재판부의 단순한 설명이지만 죄질과 솔직한 법정태도가 극형을 피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수 피고인은 평양에서 지령을 받고 귀국했다가 다시 평양에 숨어들어가 간첩활동을 한 것이 사형을 면할 수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됐다.

귀국했다가 또다시 평양에 간 것은 「목적의식을 가진 간첩」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견해. 재판부까지도 피고인 중 가장 명석한 머리의 소유자로 평가했던 정규명 피고인은 1만달러의 공작금을 받아 조직적인 간첩활동을 벌인 것이 사형이 선고된 원인.

재판부는 정 피고인이 공소장 없이도 범행당시의 날짜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진술을 했었다고 밝히고 그의 뛰어난 머리와 활동에 대해서 북괴공작원 이원찬이가 『당신은 직업적인 혁명가가 되어야한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보안사범은 일반피고인과 달리 피고인의 범죄사실뿐만 아니라 전인격이 판결에 영향을 주게되며 법관의 인생관, 세계관, 예술관과 과거의 판결례 등이 종합되어 형량을 확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검사의 구형이 평양 왕래, 노동당 가입여부, 공작금 수수, 난수표 소지 등 객관적 사실만을 토대로 한 형식적인 구형을 한 것 같다』면서 형량이 결정되는 과정을 풀이했다. 김 재판장은 『피고인들에 대한 수사기록을 본 후 법정에서의 진술과 태도를 종합해보면 어느 정도의 형량이 머리에 떠오른다』고 했다.

천병희 피고인이 사형구형에서 징역15년을 선고받은 것은 평양에서 서독유학생의 동태를 제보한 것은 사실이나 서백림에 돌아온 후 북괴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학업에만 열중했었다는 임석진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어준·강빈구 피고인에게 구형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은 북괴의 지령대로 움직인 증거가 많기 때문이었다. 어준 피고인의 경우 송신난수표(다른 피고인들은 수신난수표)까지 받아 북괴의 지령대로 활동했다는 것이며 강 피고인은 잡지에 「국내정세로 보아 출판사설립 불능」이라는 내용의 암호서신연락을 한 것이 현저한 간첩활동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중형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법률해석문제인 「간첩이라는 개념」에 대해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례에 따랐다고 했다.

검찰은 정보제공의 범위를 넘어서 포섭행위까지를 간첩죄를 적용했으나 변호인측은 작전지역 안에서의 군사기밀 탐지행위를 간첩으로 보아야한다고 맞섰었다.

재판부는 군사정보에 한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일반에 관한 알려진 정보라도 적에게 알리면 불리하다고 인정될 때는 간첩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재판부의 해석에 따라 포섭행위까지도 간첩죄를 적용한 검찰의 논고는 『객관적 사실은 인정되나 독립적 평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형법상의 간첩죄에서 반공법상의 등조로 적용법조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

작곡가 윤이상, 동양화가 이응로 피고인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있는 두 예술인에게는 예상과는 달리 그들의 창작활동과 국내외의 탄원이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사형구형에서 무기, 구형 무기징역에서 징역5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윤 피고인에 대한 탄원내용이 작곡가로서의 우수성을 내세웠을 뿐이었으나 적극적으로 간첩활동을 안 했다고 인정, 감등하여 무기징역형을 선택했으며 이 피고인은 그가 설립했다는 동양미술학교(파리소재)가 정당하게 세워졌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응로 피고인이 무기구형에서 징역5년이 선고된 것은 검찰이 서신연락내용을 간첩죄로 기소했으나 재판부가 반공법상의 「동조」로 보았기 때문.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임석훈 피고인에게 징역10년을 선고한 것은 독일에서와는 달리 불란서 북괴책임자 노봉유 등이 도주했는데도 수사기관에 협조, 좋은 성과를 올리게 한 범죄후의 정상이 참작됐기 때문이다.

관련 피고인중 혼자서 선고유예판결을 받은 정성배 피고인은 원래의 사상바탕과 탈출음모가 피동적이었다는 사실이 참작됐다는 재판부의 이야기.

주석균 피고인은 동백림에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 금품을 받은 것은 인정되나 동백림에서의 불온서적을 받은 사실은 증거가 없어 고의범으로 인정되지 않아 집행유예판결을 받았다.

윤이상 피고인의 처 이수자 피고인과 이응로 피고인의 처 박인경 피고인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것은 남편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랐다는 정상참작.

여자피고인 중 김옥희, 이순자, 강혜순 피고인에게 징역3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은 남편과 함께 행동한 사실이 유죄이며 죄질이 비교적 무겁기 때문.

재판부는 나머지 여자피고인 중 부부간의 불고지죄에는 제일 가벼운 형의 면제를, 친족간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죄가 밉지 사람이 밉습니까』 피고인들의 뛰어난 재능을 아끼면서도 국가의 안전을 위해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해야만 했던 법관으로서의 고충을 말하면서 김 부장판사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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