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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돌 안 된 아이까지 특활비 … 명목은 베이비 마사지

“우리 애들 다니는 어린이집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탐사 기획] 어린이집 심층 보고서 (상) 엄마의 분노

 두 아이를 키우며 정보기술(IT) 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직장맘 김나영(33·가명)씨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달 30일 기자의 취재요청에 어렵게 응한 자리에서다. 김씨의 아이들은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한 ‘서울형어린이집’에 다녔다. 서울시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인증까지 한 곳이라 안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이 어린이집 원장은 국고보조금 등 거액의 보육료를 횡령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어린이집 특별활동은 비리의 온상이었다. 특활은 보건복지부가 2011년 3월 발표한 ‘어린이집 특별활동 적정관리 방안’에 따라 규정상 24개월 미만 영아에게는 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지키지 않고 있었다. “특활을 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아이가 방치될 수밖에 없다”며 부모들을 압박해 연령에 상관없이 특활을 하도록 강제했다.



 “첫째 아이가 두 돌이 채 안 됐을 때인데 특별활동비 5만원을 매달 내라는 거예요. 무슨 교육을 받는 거냐고 물었더니 매일 ‘베이비 마사지’를 해준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가 밉보일까 봐 꼬박꼬박 돈을 냈어요.”



  아이가 크면서 영어·음악 등 특활 과목이 늘어나 부담금은 월 13만~15만원으로 늘었지만 특활 내용이 부실하고 각종 교구들도 질이 많이 떨어져 불만이 컸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특활은 표준보육과정에 따른 연령별 프로그램 이외의 교육 활동이다. 원래 동의서를 제출한 학부모에 한해 선택적으로 운영하도록 돼 있지만 서명을 위조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 또 원래 보육교사가 아닌 전문 외부 강사가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전문성 없는 보육교사가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현장학습비도 매달 4만~5만원 정도를 냈다. 하지만 이 역시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장학습을 간다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시내 키즈카페였어요. 간식도 집에서 싸보내라고 했고요.”



 이 어린이집 원장은 “강동구에서 운영하는 다른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록할 테니 양해해 달라”는 요구도 했다고 한다. “아이에게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에 김씨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해 줬다. 문제가 있다고 여겨졌지만 아이가 마음에 걸려 제대로 항의를 하지 못했다. 김씨는 “지금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특활 프로그램을 부실하게 운영하면서 정상 진행하는 것처럼 속여 차액을 빼돌린 어린이집 수백 곳이 적발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강동구의 한 어린이집은 외부 강사를 주2회 초빙해 회당 1시간씩 월 8시간 운영한다면서 실제로는 주1회 20~30분 정도 운영하고 있었다. 해당 어린이집은 일단 강사료를 전액 특활업체에 납부한 뒤 이 중 60~80% 비용을 매달 원장 본인·차명 계좌나 현금으로 직접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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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 급식도 돈을 빼돌리는 구멍이었다. 송파구 한 아파트 관리동 1층에 위치한 R어린이집 원장 박모(43·여)씨는 “안전한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겠다”며 ‘유기농비’(유기농 인증 식자재 구입에 드는 비용)를 부모들에게 매달 5만원씩 납부하도록 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상 국고로 지원되는 보육료에 급식비가 포함돼 있어 별도의 급식비를 거두는 것은 불법이다. 더구나 R어린이집은 이 돈으로 가락시장 H상회에서 유기농이 아닌 일반 식자재를 납품받은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서류상으로만 한 유기농 업체와 거래한 것으로 돼 있을 뿐 어떤 식자재를 얼마만큼 구입했는지 세금계산서나 거래내역서 등 증빙서류 자체가 누락돼 있었다. 또 유기농 우유를 제공한다면서 원생 숫자에 비해 훨씬 적게 구입하고 납품업체인 E사에는 우유값을 모두 치른 뒤 매달 정기적으로 원장 개인 통장으로 차액을 되돌려 받았다. 지난 1년간 이렇게 빼돌린 돈이 1000만원이 넘는다. 상당수 다른 어린이집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수법으로 급식비를 빼돌려 아이들에게 부실한 식사를 제공했다.



 어린이집 세 곳을 운영 중인 원장 C씨(52·여)는 2010년부터 올 2월 말까지 식자재 업체 D사로부터 50여 차례에 걸쳐 2억1000여만원의 식자재비를 본인 혹은 차명계좌로 돌려받았다. 송파경찰서는 현재까지 수도권 어린이집 80여 곳이 D유통 등 식자재 납품 업체들로부터 돈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어린이집 통학차량 운전기사로 일하는 원장의 남편을 보육교사로 허위 등록하거나 보조교사를 담임교사로 등록해 보육료를 더 타낸 곳도 있었다. 또 어린이집에 다니지도 않는 아이를 명의만 빌려(일명 ‘유령 원생’) 허위 등록시킨 곳도 다수 적발됐다. 이들은 구청·시청 등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급식·특활·현장학습 등 관련 증빙서류도 위조했다.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면서 입출금 전표를 컴퓨터 캡처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림 파일로 저장한 뒤 거래 대상, 날짜, 액수 등을 수정·출력하는 방식을 썼다. 경찰 관계자는 “정교하게 위조돼 언뜻 봐서는 위조여부가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탐사팀=고성표·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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