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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넘 열차, 황금 크루즈 … 주먹만한 보석 달걀에 담다

니콜라이 2세가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에게 선물한 ‘시베리아 횡단열차’(1900). 기차 한 량의 길이는 6cm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금으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피터 칼 파베르제(Peter Carl Fabergé·1846~1920)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보석공예가이자 주얼리사업가다. 제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 황실을 위해 만든 섬세한 보석들로 유명한데, 특히 ‘부활절 달걀’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어른 주먹만 한 보석 달걀 속에 공작새마차기차배 등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미니어처를 집어넣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7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1902년 작 부활절 달걀이 당시 약 172억원에 낙찰돼 러시아 공예품 최고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 파베르제의 달걀을 비롯해 19세기 러시아 귀금속 문화의 정수를 모은 전시 ‘파베르제-레거시 오브 임피리얼 러시아(Fabergé-Legacy of Imperial Russia)’가 핀란드·중국에 이어 홍콩 투어를 마무리했다. 상하이에서는 60만 명이 몰렸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던 전시다. 전시 마지막 날인 4월 29일 오전 홍콩 문림로에 있는 문화박물관을 찾았다.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이었지만 단체관람객들이 만든 줄은 이미 길었다.

러시아 귀금속 문화의 정수 ‘파베르제 전’


1 ‘모스크바 크렘린’(1906). 니콜라이 2세 부부가 모스크바 크렘린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만든 부활절 달걀. 황금 열쇠를 넣어 돌리면 부활절 찬송가가 울려퍼진다. 2 각종 보석과 에나멜 기법으로 만든 부활절 달걀. 3 전시장 풍경. 차르의 망토와 문장이 보인다. 4 피터 칼 파베르제의 사진(오른쪽)과 공방 풍경.
“황제 폐하, 황후 마마를 기쁘게 해드릴 선물을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깨뜨리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서 다뤄 주십시오. 처음에 흰색 달걀을 열면 금으로 만든 노른자가 나옵니다. 그 속에 암탉이 있습니다. 두 손가락만 이용해서 암탉의 턱 밑을 누르세요. 그럼 왕관이 나올 겁니다. 왕관 속에는 루비 펜던트가 있습니다. 그것을 마마께 걸어 드리십시오.”
1885년 서른아홉의 젊은 보석공예가는 성질 급한 거구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에게 꼼꼼하게 쓴 편지를 보냈다. 자신이 만든 첫 부활절 보석 달걀의 ‘사용설명서’였다. 황제는 1882년 전 러시아 산업아트전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귀금속 경연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쓴 재주꾼 파베르제에게 덴마크 공주였던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를 위해 덴마크 보석 달걀을 본떠 만들어 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파베르제는 덴마크 스타일을 따라 하지 않았다. 대신 러시아적 창의성을 가미했다. 뚜껑을 열면 또 다른 것이 나오는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쉬카를 응용한 이 부활절 보석 달걀(이 중 왕관과 루비 펜던트는 분실됐다. 지금은 러시아의 갑부 사업가 빅토르 벡셀베르크가 소장하고 있다)에 황제 부부는 매료됐고 그에게 매년 부활절 달걀 제작을 의뢰하기에 이른다.

모스크바 크렘린 뮤지엄 타티아나 문티안 학예사
달걀 속 깜짝 선물을 움직이는 황금 열쇠
파베르제는 1846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핏줄이었던 아버지 구스타프 파베르제는 184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작은 보석공예점을 내고 파베르제가 어려서부터 러시아와 유럽 각국을 돌며 보석공예 기술과 주얼리 최신 유행을 익히고 각종 광물 연구를 할수 있게 했다. 1872년부터 아버지를 도와 사업을 시작한 그는 황실 납품을 시작한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러시아 대표로 참가했다. 유럽의 왕실과 귀족은 물론 시암(태국 왕국의 옛 이름)의 왕궁에서까지 그의 보석에 눈독을 들였다.
파베르제가 황실용으로 만든 부활절 달걀은 모두 50개. 이 중 8개는 소실됐고 42개만 소재가 확인되고 있다. 총 10개를 소장한 모스크바 크렘린 뮤지엄에서 19세기 및 파베르제 보석을 연구하고 있는 학예사 타티아나 문티안은 “그가 만든 황실용 부활절 달걀은 모두 인보이스(매매 관련 기록)가 있는데 1904년과 1905년 것만 없다. 아마 러일전쟁 때문에 만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3세의 서거로 황제가 된 니콜라이 2세도 파베르제의 열혈 팬이었다. 그는 파베르제에게 달걀을 매년 2개씩 만들도록 했다. 어머니와 부인을 위한 것이었다. 문티안은 “보통 10cm, 가장 큰 것도 30cm에 불과한 크기의 달걀에 러시아 문화와 역사의 상징을 압축해 표현했다는 것이 파베르제의 특징”이라며 “특히 작은 금 열쇠가 들어 있는 부활절 달걀은 5개가 있는데 이는 달걀 속 깜짝 선물이 움직인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5 알렉산드르 3세가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에게 선물한 ‘아조프의 기억’(1891). 7cm짜리 아쿠아마린스톤 위에 보석 배를 부착했다. 6 섬세한 라인이 돋보이는 황금마차들. 7 22가지 서로 다른 색깔의 돌을 연마해 붙여 만든 ‘예비역 사병’.
7cm 길이의 군함과 기차 … 정교함의 극치
이번 전시에 부활절 달걀은 모두 4개가 나왔다. ‘아조프의 기억’(1891)은 러시아 해군의 크루즈 ‘아조프의 기억’호를 타고 1890년부터 2년간 극동 견문길에 오른 알렉산드르 3세 부부의 두 아들 니콜라이와 게오르기를 보고 싶어할 황후를 위해 만든 것.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진한 녹색 혈석(헬리오트롭) 달걀을 열면 바다를 연상시키는 길이 7cm짜리 투명한 아쿠아마린스톤이 나오는데, 이 위에 부착한 정교한 금제 크루즈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플래티넘으로 만든 작은 보트와 닻, 돛대와 대포까지 디테일이 생생하다.
니콜라이 2세가 자신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에게 선물한 ‘시베리아 횡단열차’(1900)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완공을 앞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황금 열쇠를 넣고 돌리면 기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한 량의 길이가 6cm 정도의 기관차와 5량의 객석으로 만들어진 기차는 창문이 크리스털로 되어 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 ‘숙녀전용’ ‘금연석’ 등의 문구도 새겨놓았다. 로마노프 왕조의 상징인 독수리 세 마리가 떠받친 달걀의 실버 커버에는 9000㎞에 달하는 시베리아 철도 노선도를 그려놓았다.
‘모스크바 크렘린’(1906)은 니콜라이 2세 부부의 1903년 모스크바 방문을 기념해 만들었다. 일설에는 딸만 넷이었던 황제 부부가 아들 점지를 위해 크렘린을 찾았고 그 덕분인지 황후는 1904년 막내 아들 알렉세이를 얻는다. 크렘린의 네 개의 작은 탑과 성벽이 흰색 달걀을 받치고 있는 구조로 이슬람 양식의 황금지붕 속에는 러시아 작곡가 카스탈스키가 작곡한 2곡의 부활절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뮤직박스가 들어 있다. 손톱만 한 창문 속으로 들여다보면 반대편에 성화(聖畵)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비쳐 보인다.
네 번째 달걀은 미완성본이었다. 구름에 둘러 쌓인 듯한 다크블루빛 구체(球體)로 파베르제가 과연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달걀뿐 아니라 다른 보석품도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팬지꽃’(1904). 팬지꽃이 투명유리병에 꽃혀 있는 모양인데 물과 유리처럼 보이는 것은 크리스털이고 꽃잎이 접히는 팬지꽃은 금과 다이아몬드, 라인석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니콜라이 2세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작으로 다섯 남매의 섬세한 수채화 초상화를 1원짜리 동전만 한 다이아몬드 액자 속에 그려넣었다. 높이가 15cm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작은 초상화는 못 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파베르제는 광물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 중 하나가 ‘예비역 사병’이라는 작품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병사의 표정과 자세가 살아 있는 것처럼 온기가 느껴지는데,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22가지 돌을 붙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모자의 챙수통가방버클군화소총을 이루고 있는 돌들의 질감이 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8 알렉산드르 2세가 황후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에게 결혼 25주년 기념 선물로 준 팔찌(1866). 알렉산드르 2세(가운데)를 중심으로 그의 여덟 자녀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9 ‘소녀상이 있는 시가케이스’(1907). 10 미니보석함에 들어 있는 보석 커버 가스펠 11 러시아 황실 장식품. 12 ‘Virgin Kazan’(1899~1908). 유화 위에 진주 등으로 장식했다.
새로운 재료, 기법 그리고 시스템
파베르제가 당시 유럽 최고의 장식미술가이자 사업가로 꼽힐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타티아나 문티안 학예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네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우선 그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당시 막 쓰이기 시작한 플래티넘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신의 보석 제작에 적극 활용했다. 또 우랄산맥 주변이나 시베리아 지역에서만 나는 컬러스톤의 가치도 높이 샀다. 이번 전시에서도 자수정 십자가, 황수정을 갈아 만든 불독, 비취 사자와 코끼리, 마노석 원숭이, 문상화강암으로 만든 부엉이, 흑요석 달팽이 등은 광물의 특성을 극대화한 파베르제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기법에 대한 활용이었다. 예를 들어 길로셰 에나멜(guilloché enamel) 기법은 18세기 프랑스에서 개발된 것이지만 그는 더 깊은 느낌이 나도록 했다.
여기에 자신만의 색채기법까지 더했다. 문티안은 “파베르제에게 하얀 색은 그냥 하얀 색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흰색을 오이스터 화이트라고 명명했다. 새먼 핑크, 임피리얼 블루, 스트로베리 레드 등 이렇게 만들어낸 자신만의 색깔이 144개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이를 형상화했다. 민들레 홀씨를 보고 그런 느낌을 주는 다이아몬드 꽃을 만들기도 했다.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로는 일본 문화에도 관심을 가졌다. 일본식 분재와 하이쿠에 감명을 받아 이를 꽃과 소나무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단순한 공예가가 아니라 감각 있는 사업가였다. 보다 나은 작품을 보다 많이 생산하기 위해 그는 분업 시스템을 만들고 손이 빠르고 꼼꼼한 보석 전문가들을 끌어 모았다. 그의 스튜디오는 최고 500명이 넘는 아티스트와 공예가가 모여 러시아 황실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했다.
1913년 파베르제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탄생 300주년을 맞아 주목할 만한 부활절 달걀을 만들었다. 차르 18명의 섬세한 초상화가 새겨진 화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은 로마노프 왕조에 이어 유럽 최고의 보석공예 가문도 송두리째 쓰러뜨려 버렸다. 통한을 품은 파베르제는 1920년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고 프랑스 칸에 묻혔다.
어떻게든 회사의 명성을 유지하려던 가족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회사는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 국유화됐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탄생 400주년을 맞은 올해, 마침 이 기사가 실리는 5월 5일은 올해 러시아 정교의 부활절이다. 만약 파베르제가 다시 부활한다면 그는 어떤 깜짝 선물이 들어간 부활절 달걀을 만들어 21세기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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