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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지나서야 빛 본 화필 … 18세기 문인화의 절창

단풍잎이 드문드문 달려 있는 나무가 계절의 무상함을, 홀로 앉은 노인이 쓸쓸함을 드러낸다. ‘밀려난 자들의 그림’ 남종문인화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표암 강세황의 ‘노인관수(老人觀水: 노인이 물을 바라보다)’다. 바위 틈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노인이 표암 자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진 간송미술관]


그는 밀려난 이들의 대변자였다. 명문가 태생이었지만 출세길이 막혀 그림 그리는 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호구지책으로 농사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화평을 써주면서 수 십 년간 연마한 실력은 환갑이 돼서야 세상에 드날릴 수 있었다. 60세에 처음 벼슬길에 나섰고, 예원(藝苑·예술계)의 영수로 18년을 더 살았다. 후대는 그를 시서화 삼절(三節)이자,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의 스승으로 기억한다.

표암 강세황 탄신 300주년 … 간송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표암(豹菴) 강세황(1713∼91) 얘기다. 표암이 올해로 탄신 300주년을 맞았다. 그를 기리는 여러 행사 가운데 첫 단추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끼운다.



12일부터 여는 ‘표암과 조선남종화파전’이다. 표암을 중심으로 동년배인 원교(圓嶠) 이광사(1705∼77), 호생관(毫生館) 최북(1712∼86), 제자 세대로 단원 김홍도, 긍재(兢齋) 김득신(1754∼1822) 등 20명의 70여 점을 내놓는다.



 다음 달 25일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서 ‘강세황: 예술로 꽃피운 조선 지식인의 삶’전을 연다. 간송의 전시가 표암과 그의 시대를 일별하는 입문 성격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표암의 자화상,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이명기가 그린 표암 초상화, 서양화풍을 실험한 표암의 산수화 ‘영통동구(靈通洞口)’ 등 이 박물관이 갖고 있는 표암 관련 대표작을 한껏 뽐내는 특별전이다. 또한 표암의 묘가 있는 충북 진천군에서는 한국미술사학회 주관으로 7월 초 학술대회를 연다.



벼슬 길 막혀 농사 짓기도 … 뒤늦게 출세



71세의 강세황은 만년에야 벼슬아치가 된 자신을 상징하듯, 평복에 관모를 쓴 기묘한 모습의 자화상(보물 제590-1호)을 남겼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비범한 출생, 젊은 날의 역경, 강세황도 이런 길을 밟았다.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냈고, 종조부는 현종의 부마(임금의 사위)였다. 명문가의 가세는 그의 대에 기울었다. 맏형이 과거 부정을 저지른 데 이어 역모에 가담했다. 입신(立身)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체면을 유지하려면 문인화가로 살아가는 길 뿐. 생계가 어려워 32세에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낙향했고, 여기서 환갑이 될 때까지 농사 지으며 서화를 수련했다.



 인생의 전기가 된 사건은 임오화변(壬午禍變), 즉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사망한 일이다. 그날은 표암의 50세 생일, 소식을 들은 표암은 생일상에 고기를 쓰지 않고 소찬만 올리라 했으며 평생 생일을 그렇게 지냈다.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이 이런 표암을 눈여겨봤고, 그의 벼슬길을 열어줬다.



 정조 또한 그를 배려했다. 아끼는 화원 단원의 스승이자, 부친에 절의를 지킨 이여서다. 표암이 정조 시대 예술계를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일흔이 넘은 표암은 청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행단으로 북경을 방문, 후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와 어울리는 고증학파를 알게 되고 서양 문물도 경험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겸재에서 추사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된다.



남종화 추종 … 쓸쓸한 분위기 그림 남겨



 표암은 비슷한 이력을 가진 6세 연상의 현재(玄齋) 심사정(1707∼69)에게 공감한 듯하다. 심사정 역시 조부의 과거 부정과 역모로 벼슬길이 막힌 문인화가였다. 진경산수화풍이 한창이던 시대에 태어난 표암이 조선남종화를 추종하게 된 까닭이다.



 쓸쓸한 문인화가의 눈길 머무는 곳에는 산수(山水)도, 난죽(蘭竹)도 쓸쓸하다. 이것이 조선남종화의 정서다. 조선남종화가 계승한 것은 명대의 남종문인화, 원말 사대가를 계승한 재야 문인화가들의 사의적 화풍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표암일까.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지금 우리가 처한 입장과 비슷해서”라고 운을 뗐다. “만족의 환희, 실망의 고통, 예술이란 크게 이 두 가지 감정에 공감하는 표현인 경우가 많다. 표암의 경우 후자다. 처한 상황이나, 그림에서 풍기는 쓸쓸한 정조가 그렇다. 성공한 이들보다 실패한 이들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세상이다. 표암의 그림이 더욱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간송미술관의 전시는 26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 02-762-0442.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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