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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이병복 3막 3장'

이병복
어두컴컴한 전시장 구석에 선 그는 여간해서 불빛 쪽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주로 일해 버릇해서 밝은 조명 아래는 어색하다고 했다.



의상·무대와 함께한 60여 년 … 또 한바탕 연극의 시작이다

 ‘무대 뒤의 여자’는 그늘에서 그늘로 느리게 움직였다. 그 동선(動線)은 자신의 작품처럼 곡선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무대미술가란 말 쓰지 마세요. 뒤 광대라 해주세요.” 무대 앞 광대 배우를 뒤에서 건사하는 일꾼임을 자임하는 그는 ‘가(家)’자 붙는 것도 싫다고 했다. 이병복(86) 선생은 완벽하게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무대미술가 이병복이 연극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을 위해 그린 밑그림. [사진 아르코미술관]
 2일 오후 서울 동숭길 아르코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이병복, 3막 3장’은 뒤 광대 이병복이 걸어온 무대 뒤의 궤적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한국 연극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씨는 20대 초,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시절 연극과 연을 맺었다.



한국전쟁과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 외엔 연극판을 떠난 본 일이 없다. 인생 그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다. 1948년 ‘극단 여인소극장’의 창단 멤버로 시작해 66년 ‘극단 자유’를 만들고 69년에 ‘카페 떼아뜨르’를 세웠던 그를 ‘연극계의 대모(代母)’라 부르는 건 오히려 계면쩍다. 연극보다 더 진한 삶을 연극판에 쏟아 부은 ‘어미의 정’으로 그가 만들고 세운 옷과 무대는 전시장에서 또 한 편의 연극으로 공연된다.



 이병복이 여일하게 붙잡고 있는 재료는 한지(韓紙)와 삼베 같은 조선종이와 천이다. 전통과 자연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는 그의 무대는 땅의 색과 질감, 하늘의 형과 변전(變轉)을 닮았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에선 요기(妖氣)가 흐른다. 채우기보다 비우기에 몰두한 텅 빈 무대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바람이 인다. ‘따라지의 향연’ ‘햄릿’ ‘왕자 호동’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 ‘피의 결혼’에서 그가 창조한 옷과 무대는 이곳에 살다간 사람들의 넋과 생명의 질김을 한 올 한 올 엮었다 풀고, 묶었다 쏟아놓는다.



 한국 연극사의 살아있는 아카이브(기록보관소)로서 전시는 자칫 회고조로 흐를 위험을 아슬아슬 넘나든다. 추억을 과감히 덜어내고 현재진행형 현대미술전으로 만들었더라면 더 온당한 ‘이병복 해석’이 됐을 텐데…. 전시는 6월 30일까지. 02-760-4604.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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