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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죽고 기도는 산다 노동 속에서 …

충북 단양에서 10년째 영성공동체 ‘산위의 마을’을 이끌고 있는 박기호 신부. 그가 머무는 사제관은 소 키우는 우사 안쪽에 있다. 보다 가까이서 소를 키우기 위해서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마을에서 가장 어린 두 살짜리 자연이. [프리랜서 김성태]


천주교 박기호(64) 신부가 이끄는 신앙공동체 ‘산위의 마을’이 설립 10년째를 맞았다. 엄격한 신앙 생활, 무소유의 원칙, 절제와 금욕, 수행으로서의 노동…. 일종의 평신도 수도원 마을이다. 사제나 수녀의 수도원이 아닌 아이 딸린 가정, 독신자의 수도원 말이다.

영성 2.0 ⑩ 박기호 신부



충북 단양서 ‘산위의 마을’ 10년째



박기호 신부
 지난달 초 박 신부에게 마을 취재를 요청했다. 박 신부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외부인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마을의 평정을 깨뜨리는 걸 염려하는 듯 했다. 거듭되는 요청에 ‘최소한 2박3일 취재’라는 단서를 달아 승낙했다. “두어 시간 둘러봐서는 살림살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거였다.



 지난달 18일 단양행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을은 충북 단양 보발리 소백산 자락의 해발 490m 고지에 있다. 서울 청량리에서 4시간 반이 걸렸다. 연계 교통편이 좋지 않은 탓이다. 단양터미널에서 보발 가는 행정버스는 하루에 네 차례만 운행한다. 보발1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도 경사진 길을 30분 가량 걸어 올라가야 했다.



 신부까지 28명이 산다는 마을은 조용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 2만 여 평에 공동체 식구들이 거주하는 대여섯 채 건물, 감자와 야콘 밭, 비닐하우스, 우사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밭농사·취사·축우·세탁·교육 등 주민들에겐 각자 주어진 임무가 있다. 모두 어디선가 자기 몫의 노동을 하고 있을 터였다.



 더부네 집에 짐을 풀었다. 1층은 7박8일 단기입촌자를 위한 숙소, 2층은 예배당으로 쓰는 건물이다.



 마당에 자연이가 나타난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다. 자연이는 2007년 마을에 정착한 김영기(41)씨의 둘째다. 두 돌이 막 지난, 마을에서 태어난 첫 생명이다. 어른들에게는 마을이 대안 공동체나 귀농 실험장이겠지만 자연이에게는 고향일 뿐이다.



 자연이는 웬만한 성가의 멜로디를 대부분 기억한다. 엄마 김연옥(40)씨 품에 안겨 아침·저녁 미사를 빠뜨리지 않고 참석해서다. 미사 도중 자연이의 흥에 겨운 성가 흥얼거림은 하루치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마을의 윤활유라고 했다.



TV·신용카드 없이 자발적 유폐



비닐하우스 안의 박 신부(오른쪽)와 마을 아이들.
 박 신부와 마주 앉았다. 그는 늦깎이 신학생 시절 해방신학에 심취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를 지냈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여덟 살 위 친형이기도 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운동권’이다. 그런 그가 산골에 틀어 박혀 유기농 마을을 이끈다. 전향한 것일까.



 “진정한 변혁은 개인의 실천에서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환경적인 이유로 원전을 반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육식에 대한 반성으로 고기를 덜 먹는다든지 뭔가 실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죠.”



 박 신부는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마을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소비문화는 우리 안의 탐욕을 증폭시킨다. 인간적인 가치체계를 상업화해 결국 공동체 자체를 붕괴시킨다. 그 안에 있으면서 제대로 살기는 어렵다. 빠져 나오는 게 낫다. 그래서 택한 게 산위의 마을이라는 거다. 소비문화의 상징인 시장(市場)과의 결별, 자발적인 유폐(幽閉)다. 마을사람들은 TV·신용카드도 가질 수 없다. 그런 걸 쓰지 말자는 ‘오프(OFF) 운동’이다.



 오후 5시 반. 저녁 식사 종이 울린다. 유기농으로 지은 감자가 나온다. 달다. 설거지는 각자 한다. 최소한의 수돗물을 써야 한다.



박 신부가 담담하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담론이나 사상을 실현한다는 성취감으로 사는 것과 실제 자기 몸으로 사는 것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신부는 “평균 1년에서 1년 반이면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노동과 신앙 생활로만 이뤄진 단순한 삶이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몸에 버거웠던 걸까.



 오후 10시. 소등 시간이다. 화장실에 다녀왔다. 재래식 화장실이다. 유기농을 위한 퇴비 생산에 필요해서다. 오줌도 버리지 않고 액비(液肥) 로 재활용한다.



대도시서 온 부부 “불안 사라졌다”



 19일 오후. 김영기씨와 입촌 3년차인 김정하(49)씨가 감자밭 이랑에 검은 비닐을 덮고 있다. 흙 속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한 멀칭 작업이다. 김씨는 잡지사 영업직원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도시를 등진 딸 태경이가 힘들어하지만 나와 아내는 행복하다”고 했다. “이곳 생활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밖에 있을 때 느꼈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사라졌다”고 했다.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은 인생학교”라고도 했다.



 20일 아침 일찍 마을을 빠져 나왔다. 도시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서울에는 비가 왔지만 보발에는 눈이 왔다. 눈이 오면 마을사람들은 하루의 노동에서 해방된다.



 전날 밤 신부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이 너무 물질적으로 흐르다 보니 새 교황이 가난의 영성을 강조하신 것 같다. 한국종교가 살 길은 다시 가난해지는 것뿐이다. 내가 힘 있고 자신만만할 때는 기도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산위의 마을은 그렇게 가난했다.



단양=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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