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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군 유해발굴은 시간과의 싸움 … 올해 벌써 198명 찾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 자랑도 하지 않았다 /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 후회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 / 우리는 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 생각했고 그리고 그렇게 했다 /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 나 역시 이렇게 적을 막다 / 쓰러짐은 /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함이니 / 후회는 없다’



 6·25 때 전사한 어느 무명 학도병이 남긴 것으로 알려진 편지 내용이다. 편지의 정확한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줄, 한 줄이 가슴을 파고든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국방회관에서 열린 ‘2013년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설명회’에서도 이 글이 동영상을 통해 소개됐다. 전사자 유가족,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법의학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6·25 당시의 전투 장면 흑백 영상과 함께 편지 글이 소개되자 대부분 60대 이상인 유가족 중 몇몇은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설명회장 입구에는 그간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녹슨 철모·소총·탄피·대검·야전삽 등이 전시됐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전사·실종자는 총 16만2374명. 이 중 유해가 수습돼 현충원에 안장된 전사자는 2만9202위뿐이다. 미수습 전사자가 무려 13만3172명이나 된다. 북한 지역을 포함해 한반도 어느 산골짜기에 외롭게 누워 올해도 새봄을 맞이했을 것이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육군 군악대 병사가 가곡 ‘비목’을 부를 때 나도 눈가가 시큰해졌지만, 이건 감상(感傷)에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군 유해발굴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올해가 벌써 휴전 60주년이니 발굴·신원확인 작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국토가 개발되고 시멘트로 덮여 발굴 시도 자체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박근혜정부가 역대 정부 최초로 ‘6·25 전사자 유해발굴 확대’를 국정과제로 격상시킨 것은 다행이다.



 지난 3월 4일 포항(해병1사단)과 문경(50사단)에서 열린 개토식(開土式)을 신호로 올해 국군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군이 전국에서 찾아낸 국군 전사자는 993명. 별도로 유엔군 전사자 2명을 발굴했고, 북한군 19명, 중공군 31명도 60여 년 만에 햇빛을 보았다. 올해는 3월 개토식 이후 벌써 198구를 찾아냈다. 경남 창원, 경북 칠곡, 경기도 양주에서 그저께 6구, 어제도 6구를 새로 발굴해 모셨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우리만의 땅이 아니다. 지난 연대(年代) 수많은 선배의 삶과 죽음, 피와 땀, 비명과 환호가 곳곳에 배어있다.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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